1964년 7월 발생한 영화 '잃어버린 태양' 난투극은 몇 가지 사건을 더 파생시켰다.
주먹 출신인 연합영화사 제작부장 김태수와의 지프차 속 주먹다짐 직후 충무로 주먹 오형제가 '목마른 나무들' 미아리 촬영장에 나타나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연합영화사 측의 중재로 일단 '목마른 나무들' 촬영을 했으나 내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은 "너 이 새끼, 배우 해먹나 봐라"라며 공갈 전화를 해댔다.
다음날 아침 산업경제신문에는 내 주먹에 맞아 이빨 부러진 김 부장의 우스꽝스런 얼굴이 클로즈업돼 실렸다. '배우가 제작부장 폭행'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나는 하루 아침에 폭력 배우로 질타를 받는 신세가 됐다. 도처에서 그럴 수 있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주먹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권투 선수 출신인 내 매니저 안천호는 자신이 상황을 수습해볼 터이니 일단 며칠 간만 서울을 떠나라고 권했다. 나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데리고 제주도로 떠났다. 청부업자가 지방에서 사고를 치고 서울로 도피하면 경찰들도 수수방관하던 시절이다.
엄앵란과 매니저에게만 행방을 알려주었지만 막상 도피처인 제주도에 도착하니 내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됐다. 우리 가족은 몰래 제주관광호텔에 투숙했다. 그러나 '신성일이 왔다'는 소문이 쫙 퍼지는 바람에 그 호텔 맞은편에 자리한 제주여고 학생들이 담벼락에 매달린 채 나를 큰소리로 불러댔다. 그 중에 여배우 오수미가 있었다는 사실도 나중에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들었다. 오수미는 당시 제주여고 2학년이었다.
그러던 중 제주여고 교감 선생이 내 방을 찾아왔다. 나 때문에 아침 수업을 못하고 있으니 호텔 옥상에 올라가 제주여고 학생들에게 인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5층 옥상에서 손을 흔들어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교감 선생은 내 팬이라며 사인까지 받아갔다.
제주도가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가칭 5.16 횡단도로를 처음으로 만들고 있을 때였다. 5공의 삼청교육대 전신으로 박정희 정권이 61년 창설한 국토건설단이 그 도로에서 곡괭이질 하고 있었다. 깡패와 부랑자들이 강제 동원된 집단이었다.
서귀포로 갈 때 서해안 모슬포의 자갈길 위로 승합차를 타고 6시간 반을 돌아야 했다. 서귀포는 듣던 대로 이국적 풍광으로 나와 어머니의 마음을 빼앗았다. 노인네를 모시고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눈 앞이 깜깜했다. 차량 기사는 서귀포 경찰서장에게 부탁하면 횡단도로를 탈 수 있다고 귀띔했다. 내가 서귀포 경찰서에 들어서니 야단이 났다. 서귀포 경찰서 직원들과 다같이 사진 한 장 찍으니 만사형통이었다. 경찰서장의 사인을 받아 공사 중인 도로를 타고 제주시까지 2시간 만에 넘어왔다.
다음 날 아침 선배 배우 장동휘에게 전화가 왔다. '배신'을 같이 촬영해 잘 아는 사이였다. 그는 인천의 유명한 주먹 출신으로 악극단 생활을 하다 영화계로 들어왔다. 발차기의 달인인 그는 다짜고짜 다그쳤다.
"나 장동휘야. 너 왜 사람을 함루로 패? 사과 안 해?"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주먹 편을 들다니. 충무로 주먹 오형제가 장동휘에게 비호를 요청했음직 했다.
"장 선생님이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사과는 내가 받아야 합니다."
결국 서로 감정이 상한 채 전화를 끊었다. 이 사건으로 우리는 영원한 원수가 됐다. 세월이 흘러 78년, 배우협회위원장 선거시 험악한 분위기로 치고 박기 직전까지 갔다. 제주도에서의 삼박사일 동안 매니저가 일을 정리했다. 김 부장을 위시한 충무로 주먹 오형제와는 화해 후 형제처럼 지내게 됐다.
정리=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