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 넥센 감독은 지난달 28일 목동 두산전 9회말 모험수를 던졌다. 4-6으로 뒤지던 1사 2루에서 포수 허도환의 타석 때 강병식을 대타로 기용했다. 허도환도 선발 유선정을 대신해 대수비로 들어와 있던 만큼 더 이상 포수가 남아 있지 않았다. 강병식이 1타점 2루타를 쳐 기대에 부응하자 김 감독의 머리속이 복잡했다. 추가 적시타로 연장전에 돌입하면 누구를 포수로 앉힐 지 결정해야 했다.
비단 김시진 감독만의 고민이 아니다. 올시즌 유독 경기 중간에 포수 공백 사태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SK 3루수 최정은 잠실 LG전 9회말에 실제로 포수 마스크를 쓰고 나갔다. 열띤 추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포수 정상호, 최경철은 물론 1루수 최동수까지 써 버렸기 때문이다. 두산 외야수 이성열은 지난 8일 광주 KIA전에서 백업포수 김재환마저 부상을 당하자 3년 여 만에 마스크를 썼다.
예비포수를 준비하라1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하는 진풍경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것은 각 팀들이 초반부터 사활을 건 총력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전력이 평준화된 상황에서 기선 다툼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뒤를 생각하지 않는 용병술을 쓰다보니 경기 막판 포수가 구멍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 팀들은 포수를 2명만 등록하고 있다. LG와 SK만 3명씩 등록해 놓은 상태. SK도 줄곧 2명으로 운영하다 주전포수 정상호가 지난 30일 발톱이 깨지는 부상을 당하자 2군에서 김정훈을 급히 올린 것이다.
모든 팀들이 투수 12명과 야수 12명을 기본으로 유지하려다보니 포수로 3명을 등록할 여유가 없다. 총력전이 거듭되다보니 불펜투수와 대주자·대수비 요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총력전으로 인한 선수들의 줄부상과 체력고갈도 포수를 여유있게 운영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든든한 두산 SK포수왕국 두산과 용병술의 귀재 김성근 감독이 있는 SK는 큰 걱정없다. 두산에는 포수 출신의 외야수 이성열이 항시 대기하고 있다. 이성열은 LG시절이던 2006년까지 포수를 봤고 지난해에도 포수 복귀를 준비한 경험이 있어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SK는 올시즌 초반 베테랑 내야수 최동수를 10년 만에 포수로 출전시켜 예비용으로 확신을 얻었다. 그가 없을 때는 지난달 17일처럼 최정으로 임시변통이 가능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최정은 2006년에도 한 차례 임시 포수를 본 적이 있다.
LG에도 지난해까지 포수를 봤던 대타요원 윤상균이 있어 사실상 조인성, 김태군만으로도 걱정이 없다. 외야수 이택근도 포수 출신이다. 롯데는 강민호, 장성우 두 명의 포수가 든든하지만 유사시에는 한때 최고 포수였던 지명타자 홍성흔을 긴급투입하면 된다.
막막한 한화 KIA삼성은 주포 최형우와 박석민에게 가끔 포수 훈련을 시키는 준비성을 보였다. 주전 포수 진갑용이 고령으로 부상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2002년 포수로 입단했던 최형우와 포구 및 송구 능력이 좋은 박석민을 '보험용'으로 준비한 것이다.
넥센 김시진 감독이 지난 28일 연장전에 대비해 염두에 둔 선수는 내야수 강정호와 외야수 오윤이다. 강정호는 포수로 입단한 뒤 내야수로 전향했고 오윤은 2005년 상무에서 제대하기 전까지 포수였다.
한화와 KIA는 상대적으로 포수가 약한데다 마땅한 예비포수마저 없어 막막하다. 한화에는 내야수 한상훈이 고교시절 포수를 봤던 경험이 있는 정도. KIA는 최고참 외야수 이종범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종범은 유격수이던 1996년 두 차례 땜질포수로 투입된 적이 있다.
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