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벨기에 헤이젤 보두앵경기장에서 열린 유러피언컵(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결승전에서 리버풀(잉글랜드)과 유벤투스(이탈리아) 서포터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져 39명이 사망하고 454명이 부상당했다. '헤이젤 참사'로 불리는 이 사고로 훌리건 29명이 구속되고 잉글랜드 팀은 5년간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당했다.
1989년 4월 15일 영국 셰필드 힐스버러경기장에서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가 벌인 FA컵 준결승전에서 관중 96명이 압사했다. 좁은 경기장에 많은 관중이 몰렸으나 경기운영 관계자들의 대책이 미비했다. 이 사고는 영국 국영방송 BBC로 생중계됐다. 현장을 지켜본 영국 국민들은 경악했다.
199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기 3년전까지 혼란스러운 잉글랜드 축구계의 모습이다. '축구종가'의 자부심은 땅에 떨어졌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결국 프리미어리그가 탄생했다. 경기장을 신·개축하고 팬서비스를 강화했다. 해외선수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해외자본의 유입에 대한 걸림돌이 사라졌고 구단들이 속속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지금의 프리미어리그는 극도의 위기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K-리그에서도 승부조작을 계기로 새로운 판을 짜야한다. 승부 조작이라는 오명을 훌훌 털고 새출발하기 위해서는 새술을 담을 새 부댓자루가 필요하다. 프로축구연맹이 승부조작 대책을 발표하며 승강제 실시를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말 K-리그는 16개 구단이 단일 리그를 벌이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더이상 발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3년부터 승강제 실시라는 목표도 사실 오래된 얘기다. 하지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때문에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채 답보상태를 거듭했다. 앞으로도 승강제 도입까지 온갖 어려움이 이어질 것이다. 결사 반대하는 집단도 나올 것이다.
승부조작으로 위기에 몰린 K-리그로서는 승강제의 성공적 도입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얽힌 실타래를 풀기 어려울 땐 과감하게 칼로 베어버리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 연맹은 개혁이 아니라 혁명을 한다는 각오로 승강제 도입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