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28)이 오지환(21)에게 "넌 다 나은 것 같다. 금방 올라가겠네"라고 말했다. 베테랑 박명환(34)은 트레이닝 도중 "어린 선수들 빨리 낫게 밝은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빠른 1군 복귀를 빌어주는 그 곳. 구리의 LG 트윈스의 재활군 훈련장이다.
얼핏 밝고 훈훈해 보이지만 그들을 앞에 놓인 건 끝날 기약 없이 계속되는, 길고, 힘들고, 지루한 재활 훈련이다.주위엔 트레이너와 코치, 그리고 그들 뿐이다. 환호성이 가득한 경기장에서 마음껏 뛰고 소리질렀던 선수 여덟 명이 답답한 실내 트레이닝장에서 이를 악물고 치료와 훈련을 받고 있다. 흐르는 땀방울 속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과 '참아야 한다'는 원칙이 충돌하는 재활 현장을 지난 5일 방문했다.
AM 08:30~09:40경기도 구리 수택동 LG 2군 숙소 지하 2층 웨이트 트레이닝실. 아침 일찍부터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박명환은 어깨 근육이 뭉쳐 있다. 그는 "어제 공을 던지고 조금 당기는 느낌이 있어서 초음파 치료를 했다"고 말했다. 박명환의 어깨를 마사지하던 김병곤 2군 트레이너는 "어제 막판에 너무 세게 던졌다"며 뭉친 근육을 비틀었다.
긴 설명은 필요없었다. 박명환은 LG 입단 2년째인 2008년부터 부상에 시달렸고, 김 트레이너는 2001년부터 재활군에 몸담았다. 2009년 5월, 1군에 복귀한 박명환은 "1년 동안 옆에서 재활을 도와준 김병곤 트레이너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때의 짧은 복귀는 다시 기나긴 재활로 이어졌다.
지금 두 사람이 세운 원칙은 '늦더라도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들어 복귀한다'이다. 일이 순조롭다면 박명환의 복귀 시기는 정규시즌 막바지인 9월~10월이다. LG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면 박명환도 엔트리에 들지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은 복귀 시기를 단정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자칫 초조해지면 지금껏 견뎌온 재활훈련이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AM 10:002군 숙소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LG 챔피언스파크 야구장. 2군과 재활군 선수들이 모두 모여 미팅을 한다. 오전 9시 50분에 미리 도착한 재활군 선수들은 2군 선수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2군 선수단은 단국대와 연습경기가 예정돼 있다. 재활군 선수들은 연신 "부럽다. 건강이 최고다"라고 말한다.
이동욱 코치 주관으로 야수 미팅, 차명석 코치 주관으로 투수 미팅이 짧게 이루어지고 10시 정각에 김기태 감독이 전체 미팅을 5분 정도 했다. 그 뒤 행선지는 달랐다. 2군은 그라운드로. 그리고 재활군은 다시 웨이트트레이닝장으로.
AM 10:30~12:00내야수 오지환은 지난 5월 19일 오른 손등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은 뒤 재활군에 왔다. 오지환은 지난해 데뷔 2년 차에 125경기에 나서며 붙박이 주전이 됐다. 박종훈 1군 감독은 잦은 실책에도 그를 LG의 미래 기둥으로 여겼다. 하지만 올핸 고작 20경기만 뛰었다.
그라운드에 서고 싶은 마음을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고 있다. 박종곤 트레이너가 그의 재활을 돕고 있다. 오지환은 파란색과 검정색 EX바(손목·팔꿈치·손가락 운동에 쓰이는 엑서사이즈 바)로 오른팔 근력 강화 운동 중이다. 회복 정도를 물었더니 EX바에 대해 설명해준다. 노랑-연주황-빨강-녹색-파랑-검정 순으로 강도가 강해진다고 한다.
가장 강한 검정·파랑 바를 사용하고 있으니 오지환의 근력은 거의 90% 돌아온 셈이다. 오지환은 "오늘 46일만에 티볼을 친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7주 가까이 배트를 잡지 못했는데 오늘이 기다리던 그 날이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는 들뜬 말에 박 트레이너가 주의를 준다. "너 오늘 쓰는 힘은 50%다. 잊지 마." 이내 시무룩해진 오지환. 하지만 또다시 만지막거리는 배트는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애인 같다.
PM 12:30미팅 시간 뒤로 내내 실내에만 있었던 재활군 식구들이 바깥으로 나왔다. 각각 짐을 챙겨 챔피언스 파크 야구장으로 왔다. 점심 식사 뒤 오후 일정이 러닝 훈련이기 때문이다. 재활군 투수 민경수(30)는 "실내 훈련보다는 바깥에서 뛰는 게 훨씬 좋다. 역시 선수는 경기장에 있어야 한다"며 "러닝이 끝나면 2군 연습 경기를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기장 분위기를 느끼며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겠다는 것이다. 점심 시간의 분위기 메이커는 차명석 코치였다. 차 코치는 "최원호 재활군 코치가 코치계의 장동건"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메뉴는 육개장과 떡갈비. 후식은 화채였다.
PM 13:00~16:00러닝 시간. 이대형은 최원호 코치와 캐치볼을 시작했다. 처음 거리는 20m. 던지는 폼이 영 어색했는데 35m까지 거리를 늘려가자 예전 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형은 "던지다보니 어깨가 풀리는 것 같다.
그런데 아직 던질 때 손목 스냅을 주는 감이 돌아오지 않았다"며 최 코치에게 거리를 더 늘려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 코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던지는 거리를 늘리기보다 자세를 고칠 때라는 것. "팔로스루 동작이 부자연스럽다"며 직접 이대형의 어깨를 잡고 아래로 늘어뜨려 주었다.
혼자 러닝을 하고 있는 오지환을 보고 이종열 육성 코치가 "왜 혼자 뛰냐"며 같이 뛰었다. 둘이 뛰니 한결 러닝이 활기차다. 30분 러닝 뒤 스트레칭을 하며 이 코치는 오지환에게 물었다.
"나 요새 너 때문에 운동 많이 한다." 그리고는 농담을 걸었다. "엔씨소프트 트라이아웃 가 봐도 되지 않겠어?" 오지환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이 코치가 대답을 채근하자 최 코치가 대신 답해준다. "그걸 꼭 말을 해야 알겠어?"
러닝이 끝날 즈음 LG 2군과 단국대의 경기도 끝났다. 결과는 LG 2군의 3-2 승리. 오후 4시 이후론 자유 시간이다. 투수 민경수과 김영롱은 2군 경기를 지켜봤고, 박명환과 이대형은 웨이트 기구와 다시 땀을 흘리러 갔다. 경기에 뛰지 않는 선수의 스케줄도 이렇듯 촘촘하다.
박명환은 이 과정을 '베이비 스텝'이라고 설명했다. 재활은 어린 아이가 한 발 한 발씩을 내딛는 과정과 같다. 빨리 걸으려고 하면 넘어진다. 제3자가 보기엔 느리고 답답하다. 하지만 이게 가장 빠른 길이다. 이들은 '다시는 재활군에 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재활군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유선의 기자 [sunnyyu@joongang.co.kr]
▷[24시 ①] LG 재활군, ‘나가고싶다vs참아야한다’ 마음의 전쟁터▷[24시 ②] 최원호 LG재활 코치 “통증은 몸의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