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케이팝(K-POP)열기가 뜨겁다.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로 확산돼 한류붐을 일으킨 데 이어 미국과 유럽까지 퍼져나가 놀라움을 주고 있다. 노란머리·파란 눈의 현지 팬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케이팝을 따라부르는 장면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 이에 일간스포츠는 케이팝 열기가 어느 곳보다 뜨거운 일본과 한창 케이팝 불씨가 커지고 있는 영국 런던을 직접 찾아 현장의 분위기를 취재했다. 일본에서는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뜨거운 반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런던에서는 케이팝 열기 확산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일본내 케이팝 열기는 상상 그 이상 7월 초 일본을 뒤흔든 케이팝 열기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뜨거웠다.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일부 마니아들의 취향', '한국 드라마에 푹빠진 일본 중장년층의 해바라기 사랑'으로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 하지만 일본에서 케이팝의 인기는 트렌드에 민감한 10대 청소년부터 음반 구매력이 높은 20~30대에 이르기까지 뿌리가 깊었다.
도쿄 시부야 대형 백화점에 위치한 타워레코드에서 그 인기를 실감했다. 입구에서부터 샤이니·카라의 대형 사진이 멤버별로 길게 걸려있었다. 가장 목이 좋은 곳에 가수별로 진열대를 세워두고 케이팝 앨범을 빼곡히 채워놓았다. 음반과 함께 뮤직비디오·콘서트 영상을 틀어 고객이 즐길 수 있게 하는 등 각별히 신경 쓴 티가 역력했다. 이 밖에도 최근 일본 진출을 알린 티아라·시크릿의 앨범부터 진출을 준비 중인 아이유 등의 음반들도 눈에 들어왔다.
한국 가수들의 음반 판매량을 일본 가수들과 함께 집계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움을 줬다. 한국 가수들이 '해외가수'로 분류되는 게 아니라 일본의 '주류'로 대우받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 소녀시대·카라·2PM·f(x)·장근석 등 무려 5팀이 20위권내 순위에 올라 있었다.
음식점과 쇼핑몰에서도 케이팝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쿄의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109 쇼핑센터에서는 매장과 매장을 사이에 두고 f(x)의 '핫썸머'와 빅뱅의 '러브송'이 울려퍼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백화점 앞 광장에는 강타·보아·슈퍼주니어의 사진과 함께 'SM타운 콘서트 라이브 인 재팬' 콘서트를 광고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한국 아이돌 스타를 따라다니는 '사생팬'이 등장했다. 5일 걸그룹 티아라가 쇼케이스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는 사이 음식점 앞에는 티아라 관련 응원도구를 갖춘 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이들은 티아라가 나오자 반갑게 맞은 뒤 숙소까지 차를 타고 따라갔다. 티아라를 기다리던 한 소녀팬은 "일본 가수들도 이렇게 따라다녀 본 적이 없다. 한국 가수들과 노래는 좀 더 강한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케이팝을 구매하는 일본팬들은 한국 아이돌의 파워풀한 군무와 가창력을 높게 평가했다. 시부야 타워 레코드의 플루타니 미츠코씨는 "케이팝의 판매량이 점점 늘고 있다. 아이돌 그룹들이 지상파 방송에서도 얼굴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호감도가 급상승한 것 같다. 일본 가수들에게서는 찾기 힘든 강렬한 퍼포먼스와 가창역이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거금을 들여 티아라를 영입한 다카히로 고쿠호 제이록 대표는 "티아라를 알게되고 계약하기까지 1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본 가수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귀여움과 섹시함이 공존하는 매력이 있다. 소녀시대·카라의 뒤를 이어 일본 진출 성공 가능성이 아주 크다"라고 설명했다.
▶보수적인 영국도 케이팝 리듬에 들썩 유럽과 미국 등 서양에서의 케이팝 열풍은 이제 시작 단계다. 일본 등 아시아의 예처럼 대중문화 전반에 깊숙히 침투했거나 '폭발적인' 반응을 낳고 있는 건 아니라는 말. 프랑스를 시작으로 미국 내에서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공연유치를 원하는 팬들의 시위가 이어지는 등 '믿지못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마니아 문화' 정도의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그동안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졌던 미국과 유럽에서 케이팝 마니아 집단이 형성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무적인 일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영국까지 케이팝 열기가 미치고 있다는 것. 지난 9일(현지시각) 런던 중심지 트라팔가 광장에서 열린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 공연 유치' 시위는 영국내 케이팝 열기를 직접 느껴볼 수 있었던 결과물이다. 앞서 6월 런던 내 위치한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열린 샤이니의 일본 데뷔 기념공연에도 수백명의 현지 팬들이 몰려들었던 바 트라팔가 광장에서의 시위는 또 한번 화제가 됐다.
시위 현장에서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현지 흑인 소녀가 들고 있던 대형 태극기. 빅뱅과 2NE1 등 자신이 좋아하는 YG 소속 가수들의 사진을 등에 붙인 현지 케이팝 팬들이 태극기를 들고 한국말로 또박또박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기자가 다가서자 한 현지팬은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케빈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는 "케이팝을 듣다가 한국말도 배워보게 됐고 한국음식도 먹게 됐다. 김치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지 팬 리즈(18세, 여)는 "방학 때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준비중"이라며 웃어보였다. 시위장면을 지켜보던 한 백인여성도 "YG? 아, 케이팝!"이라고 반갑게 아는 척을 해 놀라움을 줬다.
런던 현지 레코드점에서는 아직 케이팝 관련 음반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현지 케이팝 팬들이 주로 온라인을 통해 음악을 공유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음반을 상업적으로 유통해도 될 만큼 많은 팬들이 생긴 건 아니기 때문. 하지만, 매니아 숫자도 만만치 않다. 현지에서 활동중인 '케이팝팀'은 케이팝을 즐기는 매니아들이 함께 하는 동호회. 한달에 한 번 클럽을 빌려 케이팝을 듣고 춤을 추는 모임이다. 영국에서 활성화된 클럽문화 속에 케이팝이 스며든 것. 이 동호회를 고정적으로 찾는 회원의 수는 대략 5000여명 정도며 운영진은 아예 사무실을 차려 정기모임과 관련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 인근에 위치한 주영한국문화원에서도 케이팝 축제를 열며 한류확산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원용기 주영한국문화원장은 "지난 2월 처음으로 '케이팝 나이트'라는 축제를 개최했다. 홍보 없이 페이스북에 공지만 띄웠는데 600여명이 넘게 몰려 놀랐다. 이후에도 현지의 케이팝 관련 현상들을 지켜보며 체계적인 정책의 뒷받침만 있으면 확산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영국문화의 특성상 당장 케이팝 붐이 일어나는 걸 기대하긴 어렵다. 지금은 씨앗을 뿌리고 잘 가꿔나가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이어서 "현재 런던 시내 한국음식점도 성황이다. 과거 일본식당을 찾아 문화를 향유하던 유행이 한국식당으로 옮겨왔다. 음식문화와 음악이 잘 결합되면 전반적으로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문화 외 관광상품 개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동진 기자 [kjseven7@joongang.co.kr]
정지원 기자 [cinezz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