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에 깊이 빠져 본 적이 있나요?"
중년 남성 구키는 직장 동료들에게 묻는다. 동료들과 '아베 사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베 사다라면 영화 '감각의 제국'의 소재였던 여자다. 불륜을 저지르고 그 불륜남과 사랑의 도피행각을 하다 남자를 죽이고, 그의 성기를 절단해 가지고 다니다 검거된 아주 유명한 사건의 주인공이다. 구키는 그 아베 사다에 대해 '뭔가에 깊이 빠진 여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구키는 현재 깊이 빠져 있다. 불륜에.
일본 영화 '실락원'이 개봉된다. 만들어진지 14년만의 지각 개봉이다. 1997년 일본 개봉 당시 엄청난 관객 동원은 물론 불륜의 미화라는 주제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그동안 '실락원'은 우리나라에서 몇 가지 컨텐츠로 소개됐다.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원작 소설이 번역돼 들어왔고 심혜진·이영하 주연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실락원 신드롬'을 일으켰던 영화판 '실락원'은 들어오지 못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1997년 당시엔 일본 영화 수입 금지의 시대였고 1999년 일본 영화 개봉과 함께 개봉을 추진했으나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는 4대 영화제 수상작이어야만 된다는 기준 때문에 개봉할 수 없었다. 2004년 모든 일본영화가 개봉 가능하게 됐을 땐 판권 계약 기간이 끝난 후였다. 이번엔 이전과 다른 수입사가 개봉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실락원'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절제되었으면서도 불륜의 깊은 열정을 가득 담고 있는 러브신들에 있다.
중년의 위기를 직장에서 맞이한 구키는 단정한 외모의 유부녀 린코와 때로 짧은 시간동안 만나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고 일본의 명소로 여행을 하기도 하며 육체적 사랑을 나눈다. 노천 온천의 히노키 욕조 안에서 벌이는 정사는 영화의 포스터에 사용되기도 한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 내내 절제됐던 러브신은 점점 농도가 짙어진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불륜이 린코의 남편에게 발각된 이후의 장면들이 더욱 깊은 몰입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남편이 사립탐정을 통해 만든 불륜 사진과 그들의 행적을 담은 서류를 보면서도 그들은 크게 놀라지도 않고 '올 것이 왔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사랑을 나눈다. 특히 마지막을 함께할 것을 약속하며 벌이는 정사는 깍지를 끼는 손가락, 서로를 애무하는 손과 시선, 그리고 겹쳐져 있는 몸 등을 어두운 조명 아래 가장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화 '실락원'은 러브신 뿐만아니라 모든 장면이 유연하면서도 아름답게 연출된 영화다. '하루'와 '검은 집' 등의 영화로 유명한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영화다.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가 중년남 구키 역을, '도쿄 타워'의 헤로인 구로키 히토미가 여주인공 린코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