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강원도 강릉시내 모 한식당. 김원동(54) 강원 FC 사장이 선수단과 점심식사를 했다. 22일 퇴임을 앞두고 실시한 '마지막 만찬'이었다. 김 사장은 식사 후 선수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각자에게 당부할 말을 전했다.
올림픽대표팀 멤버이기도 한 수비수 오재석(22)에겐 "올림픽팀에서도 잘 뛰어 살아남으라"고 격려했다. 한때 승부조작 가담 루머에 시달렸던 수문장 유현(27)에겐 "믿고 있다"며 등을 토닥여줬다. 선수들은 석별의 정을 담은 선물을 준비했다.
각자 한 마디씩 적은 글귀를 모아 편지를 썼고, 공격수 정경호(31)가 낭독했다. 식사를 앞두고 "절대 울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김 사장은 선수들의 정성에 결국 눈물을 보였다. 선수들도 김사장을 따라 눈시울을 붉혔다.
김원동 사장은 강원 FC 창단의 산파이자 일등공신이다. '선진화'와 '지역 밀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난 3년간 열정을 쏟았다. 남긴 발자취는 또렷하다. 수준급 시설을 갖춘 클럽하우스와 훈련장을 마련했고,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구축했다. 연탄배달, 사랑의 집짓기, 불우이웃돕기 일일찻집 등 지역민들과 함께 한 이벤트들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강원 서포터스 '나르샤'는 김 사장이 물러난다는 소문이 돌 무렵 경기장에 '퇴임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 고별경기로 치러진 16일 울산전 직후엔 기립박수로 떠나는 김 사장을 축복했다. 사장 또는 감독을 대상으로 한 퇴진 운동에 익숙한 K-리그에서 '퇴진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는 매우 이채로웠다.
이제껏 시민·도민구단은 정치권의 눈치를 보거나 입김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다. 연고지역 자치단체장이 구단주 역할을 맡는 조직 특성의 어두운 측면이다. 지역 시장 또는 도지사가 바뀔 때마다 시민구단이 크게 흔들렸다.
이젠 축구인들이 선거를 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캠프에 동참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포츠에 일로매진하는 게 아니라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게 출세하는 수단이 돼버렸다. 감독과 구단 수뇌부 뿐만 아니라 일선 프런트 직원까지도 흔들려 구단의 노하우가 날아기는 일도 많다.
김원동 사장의 후임으로는 여자 심판 출신 임은주씨가 내정됐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최문순 강원지사와 코드가 맞는다는 게 이유다. 임은주씨는 한국의 첫 번째 국제여성심판이다. 그러나 행정가로의 경험은 부족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