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왼손 박희수(28)의 바깥쪽 공을 받은 포수 허웅(28)은 "나이스 볼"을 크게 외쳤다. 타석에 있던 한화 가르시아는 "조용히 해달라"고 소리쳤다. 허웅은 "미안하다. 나는 마이너 포수다. 첫 1군 출장이다"라고 사과했다. 가르시아는 "그런가. 알겠다"고 했다. "훈련할 때의 버릇인데. 사실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게 허웅의 설명이다. 7월 30일 대전구장에서 펼쳐진 광경. 허웅에게 드디어 '1군 경기 에피소드'가 생겼다. 29일 생애 첫 1군행을 통보받은 10년차 포수 허웅은 다음날 대전 한화전에서 6회 교체출장했다. 잊지 못할 1군 첫 출장이다.
부산고 추신수의 공을 받다허웅은 부산 출신이다. 어머니 강인자(53)씨는 부산 사직구장서 7호 매점을 운영했다. 소년 허웅은 사직구장 그라운드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야구를 시작했다.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부산고 2학년 시절, 그는 당시 고교 최고투수 추신수와 배터리를 이뤘다. "1년 선배 추신수 선배의 공을 받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허웅은 2000년 주전포수로 대통령배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2002년 그는 졸업과 동시에 현대에 2차 2순위로 지명되어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방출→사업→일본 독립리그행하지만 프로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그는 늘 2군이었다. 1군 포수 마스크는 당대 박경완의 몫이었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군입대를 위해 상무 입단 테스트를 치뤘지만 낙방의 아픔을 맛봤다. 허웅은 "정상호(SK) 박노민(한화)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2006년 7월 현역으로 입대했다. 부산 신병교육대에서 조교 생활을 했다. 부산고 1년 후배 전병두(현 SK)가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멤버로 병역혜택을 받아 훈련하는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다.
군 생활 중 그는 "현대에서 방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급하게 휴가를 내어 구단을 찾았으나 돌이킬 수 없었다. 전역 후 여러 구단을 찾아 입단테스트를 치르려고 했지만 "자리가 없다"는 말만 들었다.
그래도 야구가 하고 싶었다. 허웅은 "김해에서 호프집을 해보기도 했다. 골뱅이 무침을 잘 무쳤다(웃음). 그런데 야구가 정말 하고 싶었다. 오전에는 훈련을 했다. 주말에는 사회인야구를 했다"고 떠올렸다. 2008년 8월에는 일본 독립리그로 갔다. 하지만 투수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결국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연인을 위해다시 호프집에서 일하면서도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몸을 만들었다. 어머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응원했다. 현대시절 코치였던 금광옥 SK 원정기록원에게 "입단테스트를 보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금 기록원은 "100%로는 안된다. 400%~500%로 몸을 만들어오라"고 했다. 허웅은 "정말 죽을만큼 훈련했다"고 했다.
기회가 왔다. 2010년 8월, 김성근 SK 감독이 보는 앞에서 '시험'을 치렀다. 합격. 허웅은 신고선수로 SK에 입단했다. 올 시즌에는 정식 선수로 계약했다. 동기부여도 생겼다. 어깨부상 재활을 위해 다니던 수영장에서 임두리새암(26)씨를 만나 연인이 됐다. "여기서 포기하면 나는 부산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 연인과도 결별이다." 그는 매일 이를 악물었다.
7월 28일, 허웅은 "대전으로 가서, 1군에 합류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믿기지가 않았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고 말했다. 믿기지 않을 일들의 연속이다. 29일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30일에는 첫 1군 경기를 치렀다. 동료들은 "허웅시대가 왔네"라고 했다. 허웅은 쑥스럽게 웃으면서도 "행복하다. 10년만에 1군 선수가 됐다"고 감격해했다.
대전=하남직 기자 [jiks79@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