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톨 박'으로 불린 박종규 청와대(오른쪽) 경호실장이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 도중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경호하는 장면. '피스톨 박'으로 불린 박종규 청와대(오른쪽) 경호실장이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 도중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경호하는 장면.
나는 천상 영화배우였다. 도무지 사업 마인드가 없었다. 그것은 내 스승인 신상옥 감독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아닌가 한다.
1966년 어느날 '피스톨 박'으로 불린 박종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공식 행사를 통해 박종규·이후락·김형욱 등 청와대의 실력자들과 자연스럽게 알고 지냈다. 그는 최근 미국에 다녀왔다면서 무교동 미문화원 뒤편 일식당 '호동'에서 우리 부부와 점심을 하자고 했다. 박 실장은 혼자 나왔다. 가만 보니 박 실장의 행적이 한동안 신문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나, 미국 갔다왔어."
"형님, 무슨 일 있었나요?"
"국가원수 경호하는 훈련 받으러 FBI에 갔다 왔지. 거기서 몸으로 국가원수를 막으라고 배웠지."
박 실장은 박 대통령의 그림자였다. 그의 위세는 대단했다. 수틀리면 장관·도지사에게도 정강이를 차기 일쑤였다. 실제로 육사 8기 혁명 주체로 문공부 장관을 지낸 홍종철은 그의 피스톨에 맞아 발목 관통상을 입었다고 한다. 정보부장 김형욱도 박 실장에겐 꼼짝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각하 경호 목적'이라면 통하지 않는 게 없었다.
양복을 입은 그의 허리춤에 권총집이 보였다. 왼쪽 바클 옆이었다. 난 깜짝 놀랐다.
"형님, 낮에 저하고 만나는데 무슨 권총을 차고 나오십니까?"
"남을 쏠라는 건 아니고."
손에 들어오는 작은 권총이었다. 후에 이 권총을 본뜬 라이터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위급한 상황이 오면 내게 쏘려고 하는 거지."
적에게 생포되는 상황을 가정한 그는 오른손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갖다댔다. 검지 손가락으로 당기는 시늉까지. 영화 '디어헌터'에서 러시안 룰렛을 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밥을 먹던 그는 갑자기 내게 허리우드 극장을 사라고 말했다. 낙원동 낙원상가와 허리우드 극장을 짓기 시작할 때였다. 허리우드 극장 건축은 서울시가 책임지고 있었다. 계동국민학교가 그 곳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학교와 직선 거리 200m 안에는 극장을 짓지 못하도록 하는 공연장 설치 기준법에 저촉되는 사항이었다. 극장을 유흥업소와 동격으로 보는 시각이다. 소방법도 무척 까다로웠다. 극장을 짓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학교 때문에 쉽지 않을 텐데요?"
"어, 학생 전용 극장으로 허가를 내려고 해."
그는 4층 허리우드 극장을 포함한 낙원상가 전체 인수 가격이 2억 5000만원이라고 했다. 나는 돈을 벌기만 했지, 직접 만져보지 않아 돈의 가치를 몰랐다. 옆에 앉아있는 아내 엄앵란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 돈 얼마 있어?"
엄앵란은 8500만원 가량 있다고 했다. 고지식한 나는 무조건 현찰로 사야만 하는 줄 알았다. 강직한 박 실장을 상대로 모자란 돈을 어떻게 구해야 하냐고 묻기도 싫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은행에서 융자 받으면 충분히 인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학생 전용 극장에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형님, 난 극장 안 할래요. 영우배우 해야지."
단박에 거절해 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박 실장은 "그 때 허리우드 극장 가지지 그랬어"라고 아쉬운 조로 말했다. 허리우드 극장은 결국 67년 3월 개관했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이 73년 허리우드 극장을 운영했으니, 참 묘한 인연이다. 그러나 신 감독 역시 경영을 잘 못해 얼마 후 허리우드 극장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