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가 변화구 사인을 냈는데 투수가 직구를 던진다면? 포수는 깜짝 놀라며 날아오는 공을 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엔 십중팔구 미트에서 공을 빠트리거나…. 똑같은 사인을 두고 양쪽이 각자의 의미대로 해석해서 오해가 빚어지는 경우는 안타깝게도 연인 사이에서도 비일비재하다.
그 중에서도 여성의 사인은 복잡하기 그지 없어서 이것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남성이 멋모르고 던졌다가는 자신의 커리어에 자랑스런 피홈런 1개를 추가하기 십상이다. 그럼, 여성이 보내는 복잡한 사인의 예와 그 속에 숨겨진 여성의 심리와 대처법에 대해 살펴보자. 직구, 슬라이더, 커브, 하나하나씩.
‘니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이 말은 남녀가 다투는 상황에서 99% 여성의 입에서 나온다. 남자의 입장에선 살면서 재발행된 입영영장만큼이나 만나기 싫은 문장이다. 왜 여성은 이 말을 그렇게 즐겨 하는 걸까? 여성의 입장에서는 다툼이 있을 때마다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로 넘어가려는 남성이 싫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하지만 정말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지, 무엇에 그렇게 미안해 하는지 꼭 들어야 직성일 풀릴 것 같다.
그런데 앞에 있는 남성은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절대 자신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 답답할 따름이다. 물론 남성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자신의 잘못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고, 그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세세하게도 알고 있지만, 채근하는 여성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들추어 용서를 구하기가 너무도 자존심 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여성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남성은 자존심을 조금만 누그러트리고 자신의 잘못 중 대표적인 한 두 가지만이라도 직접 말을 해주면 된다. 그러면 상대 여성이 한번 더 조목조목 예를 들어 따진 뒤 ‘다신 그러지마’하고 끝낼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 단, 어서 화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말해선 안 된다. 그러다간 ‘오빠 그것까지 했어?’로 시작하는 대량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애인이 ‘나 오늘 속상한 일 있었어’라고 하면?남녀의 커뮤니케이션 특성을 남성은 수리공, 여성은 방청객으로 비유할 수 있다. 남자는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반면 여성은 그것을 이해하고 들어줘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여성이 이 말을 남성에게 했을 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의견에 대한 동의이다. ‘나 오늘 회사에서 속상한 일 있었어’란 말은 ‘때려죽이고 싶은 상사가 있는데, 내 말을 들어보니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라는 동의를 얻는 적극적인 표현이다.
방청객인 여성은 자신의 말을 듣는 상대도 방청객이길 원한다. 이것을 수리공 남자가 뚝딱뚝딱 ‘그 사람의 행동은 이거고 너는 이걸 잘못했으니 너는 이걸 고쳐야 한다’라고 대답한다면 불똥이 남성에게 튀어 연인간의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남성들이여, 연인의 푸념 속에 그녀의 허물이 보이더라도 침묵하고 동의하라.
‘우리 그만 헤어져’의 의미도 다를 수 있다?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상의 종말처럼 들리는 이 말에도 여성은 사인에는 의미가 들어있다. 여성이 이별하는 이유는 대체로 ‘포기’이다. 여성은 자신의 남자에게 끊임없이 어떤 행동의 변화를 요구한다. 고치지 않고서는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습관들에 대한 개선요구를 연애의 과정 동안 끊임없이 사인으로 보낸다. 하지만 남성은 그것을 알아채는 것이 쉽지 않고, 그래서 동원되는 가장 강력한 사인이 바로 이별통보이다.
여성의 헤어지자는 말은 ‘나한테 좀 잘해’와 다름 없다. 헤어지자는 말 앞에 ‘이럴 거면’이 숨겨져 있다고 할까? 이런 상황에서 돌아서는 연인을 붙잡고 싶다면, 행동의 변화를 약속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수밖에 없다. 정말 끝을 의미하는 남성의 이별통보와 달리, 여성의 헤어지자는 말은 남성에게 주어지는 최후의 기회라고 볼 수 있다.
남녀간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사인 미스’의 해결책은 있을까. 뻔한 말이지만 역지사지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 성별의 성향을 알고 왜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할까를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사인 미스가 났을 때 얼른 대화에 나서는 것이다. 직구 사인을 받고 힘껏 공을 뿌렸는데 포수가 깜짝 놀란다면, 분명 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다음 공을 던지기 전에 배터리가 그라운드에 모여 상의하고 정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커뮤니케이션 오류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해결 의지를 가지고 하는 또 한번의 커뮤니케이션니까.
보너스팁이다. 여성이 ‘자기 옛날 여자친구 이야기해줘, 괜찮으니까’ 사인에 절대로 직구를 던져서는 안된다. 여성이 보내는 대표적인 꼬인 사인으로, 정면승부를 했다간 상대방이 자신의 천적 타자로 변할 것이다. 두고두고 매 경기마다 두 개 이상의 안타를 헌납하게 되는 악몽의 타자로.
송원석 듀오 연애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