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8-2 SK지난해까지 김성근(SK)-김경문(두산) 두 스타 감독을 내세워 만날 때마다 명승부를 펼쳤던 두 팀. 나란히 시즌 중 감독 퇴진이라는 아픔을 겪고 처음으로 마주쳤다. 자타공인 '명품시리즈'가 '대행시리즈' 로 변했다. 두산은 김광수 감독대행 체제로 여전히 6위에서 허덕이고 있지만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SK를 상대로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어수선한 관중석경기 전부터 SK 더그아웃은 침울했다. 이만수 감독대행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목소리를 낮췄다. 구단의 김성근 전 감독 경질에 대한 모든 비난이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는 데 대해 큰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솔직히 힘들다. 평생 웃는 얼굴로 살아왔는데 웃는다고 뭐라 그러고 가만 있으면 가만 있는다고 뭐라 그러고"라며 탄식했다. 이 대행은 이어 "홈 경기라 더 부담스럽다. 팬 여러분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경기 흐름이 끊기고 선수들이 위축될 수 있으니 (그라운드에 뛰어들어오는 것만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고 염원했다.
SK 팬들은 4일 만에 다시 돌아온 홈경기에 맞춰 대규모 조직적인 시위를 준비했다. 공개 모금을 통해 자금을 확보했고 항의 메시지를 담은 대형 현수막과 전단지를 대거 마련했다.
SK 구단은 안전을 위해 평소보다 많은 경호 요원을 관중석 곳곳에 배치했다. 야구장 밖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 병력 2개 중대가 대기했다. 다행히 팬들의 절제로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경기 중간 중간 벌어진 현수막 시위와 구호 연호에 관중석은 계속 술렁거렸다. 한 때 SK 측에서 구단주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제지하려다 경호요원과 팬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간간히 그라운드로 오물이 날아드는 등 도무지 선수들이 집중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길잃은 선수들가뜩이나 침체에 빠져 있던 SK 타선은 더욱 위축됐다. 이 대행이 직접 배팅볼을 던져주며 컨디션 회복을 주문했지만 약효는 없었다.
김 전 감독 사퇴 파동 후 4경기에서 6점 밖에 뽑지 못했던 SK는 두산 에이스 김선우의 노련한 투구에 눌려 6회까지 무득점에 그쳤다. 1회와 4회를 제외하고 4번이나 선두타자가 출루했지만 잇딴 병살타와 후속타 불발로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3회말 선두타자 안치용이 2루타를 치고 나갔음에도 정상호와 김강민이 연속 삼진을 당했고, 5회말 1사 1,3루 찬스를 정상호의 병살타로 무산시킨 것이 치명적이었다.
선발 투수 글로버는 17일에 이어 또 초반부터 무너졌다. 3회 볼넷과 연속 2안타로 선취점을 줬고 김현수에게 2타점 2루타를 맞은 뒤 김동주에게 투런 홈런까지 허용했다. 글로버가 4회 이원석에게도 홈런을 맞자 전병두로 교체했지만 그마저 5회 양의지에게 2점 홈런을 두들겨 맞았다.
SK 팬들은 경기 종료와 동시에 준비해 왔던 흰 국화를 그라운드로 던지며 '인천 야구'의 사망을 애도했다.
인천=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