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이원석은 지난 30일 잠실 한화전을 마친 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장비를 챙겼다. 마치 타격 1위라도 된 듯 싱글벙글 웃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이날 5타수 4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고 해도 분명 그 이상의 감격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이유가 따로 있었다. 시즌 처음으로 타율 2할대 진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원석은 이날 첫 타석에서 좌전안타를 치며 마침내 타율 0.201을 찍었다. 무려 83경기, 223타석 만에 이룬 일이어서 더욱 감격적이었다. 0.199만 네 차례. 마치 귀신이라도 씐 듯 그에게 2할은 마의 능선과도 같았다.
올시즌 이원석은 시작부터 꼬였다. 스프링캠프에서 당한 허벅지 부상으로 개막 열흘 만에 엔트리에 들었다. 4월12일 롯데전에 교체 출전해 연장 12회 첫 타석에 섰지만 삼진으로 돌아섰다. 이후 10타수를 채우도록 안타를 신고하지 못하다 4월21일 넥센전 세 번째 타석에서 중전안타로 뒤늦은 개시를 했다. 시작 타율은 0.091.
안타 하나 추가하면 금세 2할을 넘길 수 있었지만 두 번째 안타가 나오는데는 11경기가 더 걸리고 말았다. 23타수 연속 무안타 침묵 끝에 5월8일 롯데전 두 번째 타석에서 시즌 2호 안타를 쳤을 때는 타율이 0.032까지 떨어져 있었다. '삼푼이'라는 별명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전반기 막판 처음으로 2할을 넘길 기회가 왔다. 7월21일 롯데전 두 번째 타석 안타로 타율을 0.199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다음 타석에서 좌익수 뜬공을 쳐 고지를 넘지 못했다. 0.197로 전반기를 마감한 이원석은 7월31일 롯데전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치며 다시 0.199를 기록했다.
그러나 나머지 타석에서 안타를 치지 못했고 한 달 이상 타격감이 정체됐다. 8월23일 세 번째 기회가 왔다. SK전 첫 두 타석에서 안타와 홈런을 '몰아쳐' 또 0.199까지 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 이틀 후 다시 첫 타석에 홈런을 치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역시 타율은 0.199에 머물러 있었다.
30일 한화전 3회말 첫 타석에 선 그의 눈에 0.197이라고 찍힌 전광판 불빛이 들어왔다. 어금니를 깨물은 그가 안승민의 4구째에 방망이를 힘차게 돌렸고 유격수 왼쪽을 꿰뚫고 지나갔다. 타자 일순해서 다시 타석에 선 그를 소개하는 전광판 성적에는 0.201이 찍혀 있었다. 이원석은 "눈물이 핑 돌았다"고 그 순간을 떠올렸다.
마의 2할 고지를 넘고 나니까 방망이가 신바람을 냈다. 한 경기 2안타도 힙겹던 그가 좌익수 왼쪽 2루타로 한 이닝 2안타를 친 것이다. 5회에도 2루타를 쳤고 7회 네번째 타석까지 좌전안타를 쳐 자신의 한 경기 최다인 4안타를 기록했다. 이틀전 삼성전 마지막 타석 안타까지 포함해 5타석 연속 안타였다.
이원석은 "한번 넘어서니까 이렇게 잘 풀리는 것을 그동안 왜 그렇게 못 넘었지 모르겠다. 남들은 비웃을지 모르지만 정말 2할의 수중함을 깨달았다"며 웃었다. 다음 목표도 거침없었다. "2할을 넘겼으니까 이제 3할에 도전해야죠."
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