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진기록에 도전한다. 최초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10승 투수 하나 없이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는 것. 그냥이 아니다. '역대 최소의 규정타석 타자'라는 최악의 조건을 달고서다.
SK는 18일 문학 한화전을 치르면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가 전멸했다. 시즌 119경기를 소화해 118⅔이닝으로 유일하게 규정이닝 조건을 충족하던 글로버마저 ⅓이닝이 부족하게 됐다. 팔꿈치 부상으로 지난달 23일 두산전 이후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글로버는 시즌 내 복귀도 불투명한 상태다. 글로버를 제외하고는 100이닝을 넘긴 투수조차 없으니 규정이닝을 채우는 투수 하나 없이 시즌을 끝내게 됐다.
10승 투수는 언감생심이다. 선발투수 최다승이 글로버의 7승이다. 팀내 최다승은 마무리인 송은범의 8승이다. 구원승의 불확실성 만큼 올시즌 SK의 10승 투수 배출도 불투명하다.
최근 10년간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 중 규정이닝 채운 투수나 10승 투수가 하나도 없었던 경우는 없다. 투수력이 가장 약했던 2003년 SK가 단 1명의 규정이닝 채운 투수만으로 정규시즌 4위에 올라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차지한 적 있다. 그러나 당시 SK는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가 8명이나 될 정도로 타선의 짜임새가 좋았다. 역대 최다 인원이다. 화끈한 공격력으로 빈약한 투수력을 만회했던 경우다. 10승 투수도 최소 1명은 있었다.
하지만 올해 SK는 공격력에서도 평균 이하의 전력을 갖고도 2위를 유지하고 있어 더욱 놀랍다. SK의 팀타율은 0.264로 삼성과 공동 5위다. 게다가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는 박정권과 최정 단 2명이다. 이 역시 최근 10년간 4강팀 중 최소다. 2002년 LG가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3명으로 4위에 턱걸이한 게 최소였는데 올해 SK가 갈아치울 기세다.
'토털베이스볼'의 결정판이다. 지난달 경질된 김성근 전 감독이 최근 5년간 팀을 이끌면서 SK는 선수 한 두명에 의존하는 야구가 아니라 감독의 선수 육성과 다양한 용병술을 통한 토털베이스볼을 펼쳐 왔다. 김 전 감독 집권 기간 꾸준히 중심을 지킨 국내 선수는 투타에서 각각 김광현, 정근우 정도였다.
그런데 올시즌 그 두 명의 선수마저 부상으로 이탈했고 매년 한 명씩은 규정이닝을 채워주던 외국인 투수도 올해는 글로버의 부상으로 전무했다. 그렇다고해서 SK 마운드가 전체적으로 약해진 것은 아니다. 평균자책점 3.58로 삼성에 이어 2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른바 벌떼의 힘이다. SK 마운드는 올시즌 약해진 선발을 강한 불펜으로 메우며 버텼다. 올시즌 유일하게 선발투수보다 불펜투수가 많은 이닝을 소화한 팀이 SK다. 선발투수가 529이닝을 던진데 반해 불펜은 538⅓이닝이나 던졌다. 최근 5년간 통틀어도 불펜이 선발보다 많이 던진 팀은 없었다.
SK가 역대 최소의 규정타석 타자를 갖고도 규정이닝 채운 투수와 10승 투수 하나없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도 불펜야구로 살아남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