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는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의 줄임 말 ‘애정남’이란 코너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애정남’은 생활 속에서 접하는 애매한 것에 기준을 정해 폭소를 자아내는데, 지난 주에는 연인 간 이별의 상황이 주제였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여자들은 이별을 통보한 후 남자친구의 전화와 문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남자가 무릎을 꿇을 경우, 그와의 대화 시간을 1시간 연장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연애를 해 본 사람이라면 떠나려는 연인을 붙잡고자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남성의 심경에 ‘공감’하며 웃음이 터졌을 것.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는 그의 행동은 간절한 용기였을까? 아님 부담스러운 무모함이었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남녀의 입장차이가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성의 입장에서 무릎을 꿇는 행위는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용서를 빈다. 내게 너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존재이니,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달라’는 의미이지만, 여성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비춰질 수 있다.
대게 남성이 생각하는 자존심의 의미는 목숨만큼이나 귀중한 것이다. 따라서 이별 앞에서 무릎 꿇는 행동은 남자들에게 있어 ‘사랑의 증거’이자 ‘진심의 표현’. 그러나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뒤돌아선 그녀를 설득하려 한다면 오산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행위는 남성들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에 불과하기 때문. 남자들은 자존심을 굽히는 행동 자체가 지난 모든 잘못을 상쇄시킬 수 있을 만큼의 위력을 갖고 있으리라 믿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간혹 자존심까지 버렸는데 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느냐며 울부짖는 남자들을 본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사랑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기 전 한 가지 순서를 빠뜨린 것이다.
이별을 고하기 전까지 여자는 수 많은 경고의 사인을 남자친구에게 보낸다. 이것이 무시되고 좌절되었을 때 둘의 신뢰적 관계는 차츰 금이 가기 시작하고 끝내 이별을 생각하게 되는 것. 남자가 눈물을 보여서 혹은 무릎을 꿇었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는 여자들은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무엇 때문에 헤어지려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무릎 꿇고 사과하는 꼴이라니, 여자는 그러한 남자의 태도에 화가 난다.
미안하다는 말 혹은 자존심을 굽히는 행위 자체가 여자들이 필요로 하는 메시지는 아니다. 관계가 개선되리라는 희망과 신뢰가 좌절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 따라서 남성들은 여자친구가 말하는 문제 자체를 명확히 알고 이를 주제로 대화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연인의 입장에서 그녀가 뭘 원하고 있는지 그 해답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흔히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미안하다는 말부터 앞서는 남자들이 있다. 사과의 말 한 마디, 행위 하나로 연인 둘 사이의 깊은 골을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이별하려는 애인의 마음을 되돌리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다면, 무릎을 꿇거나 눈물을 보이기 전 그녀와의 심도 있는 대화를 시도하자. 이러한 대화의 절차를 밟은 뒤에야 비로소 사랑 앞에 자존심을 버린 당신의 모습이 헌신적이고 긍정적 의미로서 해석될 수 있다.
행위 자체는 해답이 될 수 없다. 자존심도 뭣도 없는 사람처럼 결핍되고 상황만 모면하려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다면, 피하지 말고 그녀와 마주서서 이야기해라. ‘대화’라는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진정한 의미로서의 연인 간 만병통치약일 것이다. 진심은 당신이 비참하다고 해서 혹은 떼를 쓴다고 해서 묻어 나오는 것이 아님을 명심했으면 한다.
김미연 듀오 연애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