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은퇴한 넥센 이숭용(40)은 "후배들의 동료애와 팀워크를 보고 떠나 전혀 아쉽지 않다"고 했다. "전성기 시절 현대의 자긍심과 근성도 모처럼 느꼈다"며 감격했다. 팀은 비록 꼴찌로 떨어져 있지만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할 수 있게 어느 때보다 집중력을 발휘해 준 후배들을 보며 느낀 소회다.
28일 문학 SK전 후 또 한 명의 고참 선수가 이런 감동을 느꼈다. '잊혀진 에이스' 김수경(32). 그는 이날 6⅓이닝 3피안타 무실점 호투를 하고 2년여 만에 승리를 거뒀다. 완벽에 가까운 투구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김수경은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뛰어준 선·후배 덕"이라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넥센 야수들은 이날 경기에 앞서 미팅 때 결의를 다졌다. "우리가 점수를 많이 뽑지 못해 그동안 김수경이 잘 던지고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오늘은 반드시 초반부터 점수를 많이 내자." 김수경이 최근 5경기 연속 타선 지원 부족으로 승리를 눈앞에서 놓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담았다.
집중력이 평소와 달랐다. 전날까지 최근 4경기에서 2득점이 전부일 정도로 극심한 부진에 빠져 있던 타선이 3회 유한준의 적시타로 모처럼 선취점을 뽑았다. 4회 오재일이 추가점을 올리더니 5회에도 유한준이 적시타를 쳤다. 6회에는 강정호의 2루타에 이은 상대 실책으로 1점. 7회 알드리지의 1타점 2루타까지 5이닝 연속으로 점수를 뽑았다.
그동안 김수경의 승리를 지키지 못했던 불펜진도 힘을 냈다. 이보근이 7회 1사 1·2루 위기에서 구원 등판해 실점없이 잘 막아줬고 두 차례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던 마무리 손승락이 8회 2사부터 등판해 퍼펙트로 막았다.
5-0 승리 뒤 한 코치는 "오늘은 이길 줄 알았다. 선수들의 눈빛이 달랐다"고 했다. 넥센 선수들은 전날 1위를 확정지은 삼성 선수들보다 더 강하게 하이파이브 했다. 이미 꼴찌가 확정된 넥센에게 큰 의미가 없는 1승이다. 그러나 오로지 김수경의 귀중한 승리를 위해 전력을 다한 것이다. 이숭용의 은퇴식 때 그랬던 것처럼.
넥센의 남다른 동료애는 '새 식구' 심수창의 승리를 위해 똘똘 뭉칠 때부터 도드라졌다. LG에서 17연패를 안고 트레이드 돼 온 심수창에게 두 번째 등판 경기인 8월9일 사직 롯데전에서 3-1 승리를 선사하며 감동어린 환영식을 한 것이다. 현대 시절부터 팀에 몸담았던 홍원기 코치는 "이게 전통의 힘"이라고 했다. 잇따른 '선수팔기'로 전력이 약화됐지만 넥센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