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가는 심정으로.'
13개월 만에 A대표팀에 복귀한 '라이언킹' 이동국(32·전북)이 A매치 한풀이에 나선다.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평가전을 통해 팬들 앞에서 컴백 무대를 치른다. 상대는 공교롭게도 2002 한·일월드컵의 쓰디쓴 추억과 엮인 동유럽의 강호 폴란드다.
◇9년 전 아픔은 없다이동국의 이름 앞에는 '비운의 스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열 아홉살 무렵이던 1998 프랑스월드컵 당시 가능성을 보여줘 '한국축구의 미래'로 불렸지만, 이후 국제무대에서 제 몫을 하지 못했다. 2002·2006년 월드컵은 엔트리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2002년에는 경쟁에서 밀려, 2006년에는 불의의 부상으로 각각 분루를 삼켰다. 지난해 남아공 대회를 통해 고대하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지만 활약도가 미미했다. 특히나 우루과이와 치른 16강전에서 결정적인 골 찬스를 놓쳐 비난을 뒤집어 썼다. 어느덧 노장 반열에 오른 이동국이 2014년 브라질 대회를 다시 주목하는 이유다.
2002년은 한국축구사에 큰 획을 그은 해지만, 이동국에겐 '아픈 역사'의 출발점이다. 당시 A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게으르다'는 이유를 들어 이동국을 뽑지 않았다. 이동국이 빠진 우리 대표팀은 조별리그 첫 경기서 폴란드를 2-0으로 꺾고 고대하던 월드컵 첫 승을 거뒀다.
전국이 함성과 환호로 물들었던 시절, 이동국은 홀로 침묵했다. 폴란드전도 일부러 보지 않았다. 축구 소식을 접하기가 괴로워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스물 세 살 청년의 자존심에 생긴 상처가 너무 컸던 까닭이다.
돌아온 이동국이 폴란드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전의를 불태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2년의 아픈 기억과 맞닿아 있는 폴란드를 상대로 시원스런 복수전을 준비 중이다. 컨디션은 최상이다. K-리그 무대서 연일 골 폭죽을 터뜨리며 득점포를 갈고 닦았다. 조광래 A팀 감독도 '이동국 기 살리기'에 나섰다.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진다. 골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베테랑의 존재 가치, 내가 증명한다이동국의 폴란드전 활약 여부는 A팀 내 베테랑 선수들의 존재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사다. 조광래 감독은 A팀 사령탑으로 취임한 이후 '세대교체'를 핵심 화두로 정했다.
3년 뒤로 다가온 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대비해 20대 초중반의 젊은 피들로 대표팀을 꾸릴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서른 안팎의 베테랑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를 당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당시 20대 중후반이던 멤버들 중 여전히 A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는 이정수(31·알 사드), 차두리(31·셀틱), 곽태휘(30·울산) 등 소수에 그친다.
2002 월드컵대표팀을 기준으로 하면 차두리 한 명뿐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앞선 월드컵의 유산이 현 대표팀에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다.
어느덧 A팀 내 최고참이 된 이동국이 준수한 경기력을 선보일 경우 '베테랑'에 대한 조 감독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우리 대표팀은 '기량에 비해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험이 풍부한 이동국이 선수단의 무게중심 역할까지 맡아준다면 골 결정력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전망이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