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희 광주 감독이 23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 홈 경기 전 갑자기 계란 이야기를 꺼냈다. 올 시즌 돌풍의 이유 중 하나가 계란이라는 다소 황당한 말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럴 듯했다.
광주는 클럽하우스가 없어 훈련 후 대중 목욕탕을 이용한다. 다행히 숙소 인근에 위치한 H목욕탕 주인이 협찬을 해줘 무료로 씻을 수 있게 됐다. 목욕탕 지하에 있는 헬스장도 공짜다. 하루에 두세 차례씩 단체로 목욕탕에 가니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냈다. 갈 때마다 삶은 맥반석 계란을 사먹기로 한 것이다.
연습에서 '공 뺏기' 게임을 통해 3명 정도 패자를 뽑는다. 이들은 목욕탕에 가서 계란 한판씩을 사야 한다. 계란 한판 가격이 1만원이니 총 3만원 어치의 계란을 팔아주는 셈이다. 여기에 상황에 따라 음료수까지 산다. 최 감독은 "이런 식으로라도 목욕탕 사장님께 도움을 주고 싶었다. 덩치 큰 사내놈 30명이 우르르 가서 목욕을 하니 얼마나 귀찮겠는가"라며 껄껄 웃었다.
축하할 일이 있으면 당사자가 계란을 산다. 지난 3월 A대표팀에 처음 소집된 '주장' 박기동(23)도 계란과 식혜를 팀 동료들에게 샀다. 강력한 신인왕 후보 이승기(23)도 피해갈 수 없었다. 10월 초 A대표팀에 다녀온 후 곧바로 목욕탕에서 계란을 샀다. 계란 세 판에 음료수까지. 5만원 넘는 돈을 썼다.
최 감독도 종종 '계란 파티'에 합류해 사우나에 앉아 선수들과 함께 계란을 먹는다. 그는 "일종의 '스킨십 작전'아니겠는가. 계란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팀 조직력에 큰 도움이 됐다"고 흐뭇해 했다.
광주는 이미 올 시즌 목표치를 초과했다. 5~6승과 13~14위권 정도를 예상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한 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현재 9승 8무 12패로 11위에 올라 있다. 특히 시즌 막판 '고춧가루 부대'로 활약하며 6위권 진입을 노리는 부산 아이파크(2-2무)·울산 현대(0-0무)와 비겼고, 전남 드래곤즈는 2-0으로 꺾었다.
최 감독은 "이기고 목욕탕에 가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계란도 맛있다. 하지만 지고 가면 가시방석이다"며 "다음 시즌에는 즐겁게 계란을 먹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