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로 뒤져 있던 후반 49분,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길게 울리자 경기장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이 경기의 주인공은 '아시아의 맹주' 한국이 아니었다. 서로 얼싸안고 환호하는 레바논 선수들을 뒤로한 채 우리 선수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한국축구대표팀은 15일 밤(이하 한국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소재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2014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 원정경기서 1-2로 패했다. 일찌감치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으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3차예선 조별리그 5경기서 3승1무1패를 기록한 우리 대표팀은 승점 10점으로 레바논과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에서 앞서 간신히 조 1위 자리를 지켰다. 한국은 내년 2월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을 남겨두고 있다. 조 2위까지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그라운드 안팎 모두 우리 대표팀에 불리한 환경이었다. 현지 팬 4만 명이 만들어낸 소음은 짜증스러웠다. 부부젤라와 자국 전통 악기, 박수, 야유 등을 활용해 우리 선수들이 슈팅을 하거나 반칙을 저지르면 굉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잔디밭에 가까운 그라운드 상태는 정상적인 패스워크를 방해했다.
전반 5분에 석연찮은 이유로 레바논에 프리킥 찬스를 줬고, 전반 31분에 한국 위험지역 내에서 일어난 양 팀 선수들의 신체접촉을 우리의 파울로 판정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두 차례 모두 우리의 실점으로 이어졌다. 우리 대표팀은 전반 20분 이근호(26·감바 오사카)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구자철(22·볼프스부르크)이 성공시켜 한 골을 쫓아가는데 그쳤다.
그러나 근본적인 패인은 준비 부족이다. 박주영(26·아스널)과 기성용(22·셀틱)의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했다. 조광래 감독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이근호를 최전방 공격수로, 손흥민(19·함부르크)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변칙을 시도했다. 중앙미드필더 이용래(25·수원)는 왼쪽 측면수비수로 기용했다. 박주영과 기성용 없이 상대의 두터운 수비진을 허물기 위한 비책이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공격패턴은 밋밋했고, 상대 디펜스라인을 흔들 정도로 정교하지 않았다. 서로 발을 맞춰 본 경험이 부족한 때문인지 패스워크는 타이밍과 정확성 모두 기대 이하였다.
경기의 흐름을 바꿀 조커의 부재도 뼈아팠다. 1-2로 뒤진 채 전반을 마친 조광래팀은 후반 들어 지동원(20·선덜랜드),남태희(20·발랑시엔), 윤빛가람(21·경남) 등 공격자원들을 줄줄이 투입했지만, 밀집대형을 취한 레바논의 수비진을 뚫지 못했다.
우리 대표팀은 이변이 없는 한 최종예선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최종예선에서는 한층 수준 높은 중동팀들과 맞닥뜨려야 한다. 매번 최상의 팀 구성으로 나설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전술적인 보강을 통해, 새 얼굴의 발굴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노력이 절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