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서울 기온은 영하 11도였다. 한파경보가 내렸지만 LG팬들은 오늘도 피켓을 들고 잠실구장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이 요구하는 건 '팬들과의 소통' 그리고 '프런트의 각성'이다. 백순길(53) LG단장 겸 운영팀장은 "면목이 없다. 묵묵히 매를 맞겠다"고 했다. 그는 이슈가 됐던 인사이동·FA협상·신연봉제·팬들과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27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는데 요즘처럼 고개 들기 힘든 때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프로야구단 단장이 운영팀장을 겸하고 있다.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번 인사이동이 이슈가 될 거란 생각을 못했다. LG단장으로 오기 전에도 임원이었지만 필요에 따라 종종 팀장을 겸임했다. LG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이 그렇게 한다. 지금이 LG의 위기라고 생각해서 내가 운영팀장을 겸임하겠다고 자원했다.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는 반성의 의미와 현장에서 뛰겠다는 각오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다."
- 자원했다고 하지만 FA 세 명을 모두 놓친데 대해 (전임 팀장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말이 있다.
"연말 정기 인사다. 문책 의도는 없다. 전임 운영팀장이 운영과 육성파트를 겸하고 있어서 육성팀장으로 분리해 업무를 맡겼다. 남은 운영팀장 자리는 아까 말한 대로 내가 자원했다."
- 어쨌든 프런트가 내부 FA를 모두 놓친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내부 FA는 모두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미숙했다. 그래서 실패했다. 그 중에서도 조인성을 놓친 건 내 잘못이 크다. 원 소속 구단 우선협상기간을 넘겼지만 우리에게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협상 마지막 날 조인성에게 '타 구단 협상 기간 동안 놀지 말고 운동해라. 20일 뒤에 보자'고 인사했다. 조인성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송신영에게도 조금 더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었는데 내 잘못이다. 다만 이택근과의 협상은 우리가 양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넥센이 50억 원을 지급했지만,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 김기태 감독이 힘들게 됐다. 취임하면서 '4강'을 목표로 내걸었는데 전력이 약화됐다.
"미안할 뿐이다. 내부 FA 세 명을 보내고 난 뒤 김 감독에게 '외부 FA 중 필요한 선수가 있다면 말 하라'고 했다. 그런데 거절하더라. 김 감독은 '외부 FA 영입 불가' 원칙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지금 선수들 키워서 잘 해 보겠다고 하는데, 믿음직스러운 한편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 전임 박종훈 감독이 계약기간 절반도 못 채우고 물러났다. 지난 10년 동안 6명의 감독이 LG 지휘봉을 잡았고 그 중 계약기간을 채운 건 김재박 감독 한 명뿐이다. 대부분 성적이 문제였다. 김 감독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령탑에 올랐는데 그의 계약기간 3년은 보장되나.
"솔직히 말하겠다.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3년 뒤를 장담하겠나. 하지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은 계약기간 전에 김 감독이 물러날 일은 없을 것이다."
- 신연봉제도가 여전히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보다 완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지난해 그대로다. 내부고과 50%에 외부고과 50%다. 여기에 내부평가 ±10%가 적용됐다. 여기서 외부고과는 승리 공헌도, 즉 윈셰어(WS·Win Share)를 갖고 산정했다. 박현준의 예를 들겠다. 박현준의 WS는 5월까지만 해도 전체 1위를 다퉜다. 그 페이스가 유지됐다면 올해 연봉이 3억 원 가까이 됐을 거다. 하지만 6월 이후 페이스가 떨어지며 승리공헌도 순위가 전체 15위 밖으로 밀려났다. 이는 야구기록 산정 업체(스포츠투아이)에서 제공하는 자료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 WS만 보면 박현준의 연봉은 1억 원이 채 안 됐다. 하지만 내부고과에서 1억7000만 원 이상이 나왔기 때문에 1억3000만 원의 연봉이 책정됐다."
- 올 시즌 4경기 밖에 출전하지 않은 봉중근의 연봉은 어떻게 되나.
"신연봉제 자체를 수정하진 않지만 부상·재활 선수들에 대한 예외를 만드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28일 사이판으로 직원을 보내 봉중근과 협상하도록 할 예정인데, 그 전에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 오늘도 피켓을 들고 '프런트 각성하라'고 외치는 팬들이 있다. 지난달에는 팬들이 자체적으로 '소통하자'며 페스티벌을 열었다. 앞으로 팬들과 어떻게 소통할 계획인가.
"팬 페스티벌이 끝난 뒤 십여 명의 팬들과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했다. 많은 걸 느꼈고, 반성했다. 김 감독은 상식과 예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앞으로 선수단에서 '상식을 벗어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운영팀장을 겸임하면서 프런트가 '상식' 안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 1~2년도 아니고 9년을 기다린 팬들에게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겠나. 묵묵히 채찍을 맞고, 내년을 확실하게 준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