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시장이 불황일수록 역사물의 가치는 빛난다. 여러 권의 큰 프로젝트로 안정적이고 영화·드라마 등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소설의 경우 정은궐의 '해를 품은 달', 최문희의 '허난설헌', 김별아의 '채홍', 김진명의 '고구려', 김훈의 '흑산', 김정명의 '뿌리 깊은 나무' 등이 역사물로서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대발해'가 만화로
요즘 소설가 김홍신은 남모를 재미를 느끼고 있다. 지난 2007년 펴낸 대하소설 '대발해'의 만화 원고의 완성도가 기대 이상이기 때문이다. '대발해'는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박흥용이 작화를 맡아 단행본 2권 분량까지 완성됐고,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소설로는 10권이었지만 만화로는 20권까지 제작될 예정이다. 그는 한 장의 큰 그림에 수백 명의 병사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이 연이어지자 입이 벌어졌다.
김홍신은 "무심코 첫 장을 보고 '억' 소리를 냈다. 다음장 넘어가선 '악' 소리가 났다"면서 "역사 소설을 만화로 보니 기분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이렇게 큰 스케일의 대하소설을 만화로 작화하기는 박흥용으로서도 처음이다. 박흥용은 "소설의 핵심은 발해가 우리나라의 역사라는 것이다. 김홍신 작가의 주장을 담으면서 만화적 재미를 살리려 했다"면서 "힘들기는 하지만 고구려·발해에 대한 고증을 한 조각씩 찾아모으는 재미가 있다. 지금 시대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역사물에 담아내겠다"고 밝혔다.
만화가 하승남의 대작 '삼국지'도 이 달 한국에서 단행본(형설Life 간)으로 선보였다. 일본의 메이저 출판사 중 하나인 다케쇼보가 2016년까지 단행본 30권으로 출간하는 프로젝트로 그림의 높은 완성도가 특징이다. 첫 권에 드러난 캐릭터로는 유비가 기존의 '삼국지'에 비해 무예가 출중하고, 관우가 지성미보다는 무장으로서 더 강조되고 있다.
만화가 이현세도 차기작으로 '삼국지'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삼국지를 읽을 때면 항상 궁금했던 게 있다. 등장하는 하고 많은 영웅 중 왜 유비가 주인공인지, 또 왜 가장 먼저 멸망한 촉나라가 주인공인지 궁금했다"며 "새로운 스타일로 '이현세의 삼국지'를 그려나가겠다"고 전했다.
▶어려운 시기엔 역사 돌아봐
'허난설헌' '채홍' '흑산' 등은 더욱 역사소설의 소재가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독자들이 역사의 단면을 새롭게 엿보면서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시대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있는 셈이다. 배울 것이 있다는 부분이 역사물이란 장르가 갖고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뿌리 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은 과거엔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드라마화되면서 다시 부활한 작품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각광을 받은 팩션은 자유로운 해석 때문에 드라마·영화에서도 선호된다. 이재익의 소설 '아버지의 길'은 영화 '마이웨이'와 같은 소재로 다르게 쓴 근대 역사물이다. '아버지의 길'을 출간한 허윤형 대표는 "미국은 역사가 짧아 SF가 발달했다는 분석이 있다. 한국은 역사물이 앞으로도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