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짖는 원숭이’ 무리는 전임 대장이 죽거나 물러나면 그 대장 원숭이 새끼들을 신임 대장이 달려들어 전부 물어 죽인다. 자신의 유전자만 남기기 위한 종족 보존의 본능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검둥 원숭이는 60여 마리의 무리 가운데 대장 한 마리만 암컷과 교미할 수 있다. 설마 무리 안의 모든 무리가 한 아버지에서 태어난 형제들? 물론 대장도 바뀐다. 힘이 약해지면 언제든 다른 원숭이로부터 도전을 받아 지면 물러나야 한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에서만 사는 이 원숭이들은 이렇게 종족을 유지하면서 산다. 자기 유전자를 보존하고 싶어 하는 영장류의 욕심은 이렇게 유지되나 싶지만, 이것은 건강한 유전형질 보존을 위해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일본 원숭이 일부 종족 가운데 새 대장이 전임 대장의 아이(새끼)를 죽이려 달려들면 일부 미인 암컷 원숭이는 미인계를 써서 신임을 유혹하여 새끼를 보호하고, 신임의 새끼도 갖는다고 한다.
이처럼 피 튀는 살육이 없이 다양한 유전자가 공존하는 것이 더 건강한 종족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짖는 원숭이의 형질은 그렇다 쳐도, 검둥 원숭이의 경우 섬에서만 살아가는 종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한다.
사람의 경우는 어떠할까? 원숭이도 마찬가지지만 번식을 위해서 하는 사람은 드물다. 배우자의 선택에 있어서 물론 스펙을 많이 따지지만 반드시 섹스와 상관관계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한 모임 내에서 있었던 내 기억을 펼쳐보자면 모임 내 인기녀가 별 볼일 없어 뵈는 남자와 잤다는 소문이 났다. 단지 잤다는 소문은 모임 내 남자 멤버들을 자극했다. 여기저기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그녀는 다 들어줬고 모임 내 남자 모두가 구멍동서가 됐다. 이런 일, 종종 있다.
또 다른 케이스. 만화 속 이야기지만. 어느 조직력을 자랑하는 동아리가 있었다. 거기 청순 글래머 L양이 새로 들어오고 조직원은 모두 그녀를 반갑게 맞아줬다. 그러나 L양은 유혹에 강했고 커플, 친구 등으로 얽혀있는 동아리 멤버십을 깨뜨리고자 남자들을 하나 하나 사로잡았다. 동아리방 문을 잠가놓고 방에서 옷을 벗기 시작하고, 혈기 왕성한 멤버들은 하나씩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멤버 하나가 옆 동아리실에서 시끄럽다는 핀잔을 듣게 되었다. 너희는 왜 허구헌 날 동아리방에서 섹스만 하냐고 하자, 순간 멤버는 잠겨있는 동아리방 문을 보고 미치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기처럼 그녀 손에서 놀아나고 있는 현장이 펼쳐질 거라고 믿은 것이다. 멤버 사이에 당연히 균열이 일어났고, 동거 중이던 커플은 깨졌다. 동아리의 결속력 같은 것은 생기기 전보다 더 처참하게 무너져버렸다.
직접 비교는 뭣하지만 여기서 원숭이들 무리가 갖고 있는 성격과 엇비슷한 것을 읽는다. 본능과 위기의식. 그리고 그것을 읽고 무리를 파괴하는데 재미를 붙인 팜므파탈 하나. 실제로 비슷한 일이 있었던 만큼 이야기는 실감있게 읽혔다. 섹스를 단순히 종족 보존이나 번식의 수단으로만 볼 수 있을까. 하물며 동물들 사이에서도 경쟁과 권위, 질서 유지의 수단으로 섹스가 사용되는데….
이영미는?
만화 '아색기가' 스토리 작가이자 '란제리스타일북' 저자, 성교육 강사, 성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