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의 섬뜩한 눈빛은 닳고 닳은 로비스트의 야비함으로 변해있었다. '악마를 보았다'(10)의 무시무시한 살인마로 장편 상업영화에 5년만에 복귀했던 최민식(50)이 새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팔레트픽처스 제작, 윤종빈 감독)로 다시 돌아왔다. 알량한 혈연을 바탕으로 조폭을 등에 업고 호기를 부리는 로비스트 최익현이다. '악마를 보았다' 때와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는데 밖으로 풍기는 분위기나 얼굴 표정은 완전 딴판이다. 배우들에게 숙명처럼 요구되는 '변신'이란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최민식은 2005년 '주먹이 운다' 이후 고액 출연료 논란으로 잠시 활동이 주춤했다. '해피엔드'(99) '파이란'(01) '올드보이'(03)의 명장면을 뒤로 하고 한동안 몸을 숙였다. 2007년에 연극 '필로우맨', 2008년에 저예산 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으로 복귀를 위한 워밍업을 하는가 싶더니 작년에 '악마를 보았다'에서 이병헌에 대적하는 악인 캐릭터로 저력을 보여줬다. 이번엔 최익현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하정우는 물론 조진웅·마동석·곽도원·김성균 등 연기 잘하는 후배들이 뒤에서 그를 든든히 받쳤다. 개봉은 2일.
-드디어 주인공 컴백이다. 소감은.
"즐겁고 행복하다. 또 더욱 책임감을 느낀다."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맞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읽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최익현의 캐릭터가 너무 생생해서 윤종빈 감독에게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동안 자신이 살면서 본 아저씨들의 집합체라더라. 방대했던 이야기도 많이 정리됐다."
-최익현은 '경주 최씨 충렬공파'를 부르짖는다. 실제 본관은.
"난 전주 최씨다. 그런데 종친회 같은 건 나가본 적은 없는 것 같다."(웃음)
-어떤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좋을까.
"30대 중반 이상 부양가족이 있는 가장들이라면 공감가는 게 많을 거다. 최익현의 인생 이야기가 바로 그거다."
-20대 여성관객에겐 힘들겠다.
"꼭 그럴까? 이 영화에는 또다른 미덕이 있다. 바로 유머다. 극중 조폭들의 복고 패션과 장발 헤어스타일이 왠지 친근하지 않나? 단순한 조폭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성별과 연령대에 구애받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후배 하정우에 대해 한마디.
"이 영화가 최익현의 드라마라는 점에 처음부터 공감해준 게 고맙다. 그릇이 큰 친구다. 소위 요즘 잘 나가는 배우인데, 누구나 '대장'만 하려고 하는데 서포트를 자처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기 캐릭터를 너무나 잘 소화했다."
-곽도원·김성균·마동석·조진웅은.
"모두 대단한 후배들이다. 누구 하나 연기에 소홀한 친구가 없었다. 역량이 뛰어났다. 영화업계 전반적으로도 매우 반길 일이다. 소프트웨어가 많아지는 셈이니까…"
-후배들에게 맞는 신도 많던데 괴로웠겠다.
"연기인데… 전혀 그런 것 없었다. 다만 윤종빈 감독이 구타당하는 신 찍을 때 일부러 NG를 좀 많이 낸 것 같기는 하다."(웃음)
-'남탕영화'라서 좀 서운하진 않았나.
"글쎄.(웃음) 이번엔 남자 후배들이 많았으니 다음엔 여자배우하고 작품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웃음) 멜로도 괜찮을 것 같다."
-멜로라면 어떤 여배우와.
"다 좋다.(웃음) 그러나 감독들이 써 줄지 모르겠다. 나이 많다고 싫어할 것 같다. 다만 '해피엔드' 같이 했던 전도연은 다시 생각난다. VIP 때 왔던데 오랜만이었다. 전도연하고 한 작품 더 하면 괜찮지 않을까?(웃음)"
-동국대 선배 이경규와의 인연이 계속 화제더라.
"내가 1학년 때 하늘 같은 4학년 선배였다. 매일 술을 사주셨다. 학년별로 한 명씩 4명이서 삼수갑산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모였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는지 늘 한 잔을 기울이며 얘기꽃을 피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참 많이 배웠다."
-작품도 같이 할 기회가 있을까.
"그럼, 당연하다. 제작자와 배우로서 만날 수도 있다. 좋은 작품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올해 총선·대선이 있는데 정치에 대한 소신은.
"전혀 딴 생각이 없다는 게 내 정치적 소신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배우이고 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