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석궁 사건’. 정지영 감독은 이 사건을 모티프로 영화를 만들었다.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은 사법부를 정조준한다. 사법부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기득권의 부도덕한 권위의식을 만천하에 까발렸다. 감독이란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로 자신의 철학을 시원하게 쏟아냈다.
“'부러진 화살'은 90퍼센트 이상 사실에 근거했어요. 김경호 교수가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고 하는 대사나, 판사에게 '말 끊지 마세요'라며 자신을 변호하는 상황은 실제 있었던 겁니다. 공판 기록을 보면서 최대한 사실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어요”
-1월 19일 개봉했습니다. 심정이 어떠세요?
초연해하는 타입이라 긴장을 별로 안 해요. 다 찍었으니 결과는 하늘만 알겠죠?(웃음)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을 보면 관객 반응이 열광적입니다. 좋은 징조인데요, 13년 만의 연출작이라 부담도 되지만, 그만큼 영화에 대한 기대도 클 것 같습니다.
그런 반응이 영화 관람으로 이어지면 좋겠네요. 일단 사람들이 잘 봐주는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아요. 개봉 일정이 더 늦어질 줄 알았는데, 작년 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을 때 반응이 좋아서 개봉을 조금 앞당긴 거죠. 그런데 설날 연휴에 개봉한다고 해서 솔직히 좀 놀랐어요. 이렇게 작은 영화가 큰 영화들과 경쟁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부러진 화살'의 시작은 동명 르포 소설에서 출발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원작과는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요?
엄밀히 말하면 원작은 아니에요. 그 소설이 당시 재판 상황들을 생생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석궁 사건’을 모티프로 했지,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신문 기사를 참고했다고 해서 그 신문 기사를 원작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 책을 읽으며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했고,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거죠. 사과박스 세 박스 분량의 공판 기록을 수집하고 실제 인물들을 인터뷰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렇다면 어떤 지점에서 영화의 가능성을 엿보셨나요?
사석에서 문성근 씨가 책을 주면서 한 번 읽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떤 말썽 많은 교수의 논란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는 ‘석궁 사건’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죠. 새로운 사실들을 알았어요. 단순히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한 교수의 행동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사법부의 말도 안 되는 억지와 부도덕이 보였죠. 특히 피고인 김명호 교수(극 중 인물은 김경호 교수)와 판사의 공방전에서는 스릴러 영화처럼 긴장감이 넘치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직접 김명호 교수를 면회하러 갔어요.
-직접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김명호 교수, 정말 괴짜더군요. 처음에는 “왜 찾아 왔느냐”고 하더라고요. 영화를 만들 거면 만들지 자기한테까지 허락을 받느냐고. 나중에 영화로 만들고 나서,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그 때 자기가 시비 걸면 되는데, 굳이 만들기 전에 왜 찾아왔느냐고. 그래도 서너 번 면회 가서 인터뷰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가 정말 원칙주의자라는 걸 알게 됐어요. 괴짜지만 신념이 대단한 사람이더라고요.
-안성기와 박원상의 호흡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캐스팅을 염두에 둔 건가요?
'부러진 화살'은 저예산 독립 영화로 찍으려고 했어요. 사회적으로 워낙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감독과 배우 모두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죠. 투자도 잘 안 되고요. 그런데 아는 분이 시나리오를 보시고, 안성기 씨가 연기하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한 번 물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줬어요. 그런데 바로 이튿날 출연하겠다는 대답이 왔어요. 기대를 크게 안 했는데, 캐스팅돼서 쾌재를 불렀죠.(웃음) 박원상 씨는 캐스팅 후보에는 있었지만, 처음에는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 한 바퀴 돌아서 박원상 씨한테 갔죠.(웃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출연을 부탁했더니 원상 씨가 “연기로 복수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연기를 정말 잘하더군요.
-두 분 다 출연료를 받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잘돼야 해요. 흥행하면 배우들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덜할 텐데.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가 관건입니다. '부러진 화살'의 경우는 어떤가요?
이 영화는 90퍼센트 이상이 사실에 근거했어요. 대사도 거의 실제 인물이 했던 말을 그대로 썼어요.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는 김경호 교수 대사나, 판사에게 ‘말 끊지 마세요’라며 자신을 변호하는 상황은 실제 그대로예요. 공판 기록을 보면서 최대한 사실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어요. 이런 설정이 영화의 극적인 재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설정이라고 오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화는 사실을 반영하는 게 핵심이에요. '부러진 화살'은 철저하게 사실에 의존한 영화입니다.
-'부러진 화살'은 사법부의 부도덕을 날카롭게 파헤쳤습니다. 이 영화의 문제 제기로 어떤 효과를 기대하시나요?
이 영화는 소통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사법부가 공정한 법을 집행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기득권의 부도덕한 권위의식 때문이에요. 아주 잘못된 생각이죠.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봐요. 그리고 요즘 관객은 어쩌면 이런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어요. 극장에서 오락거리로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찾는 거죠. 안 그래도 사회가 골치 아픈데, 굳이 극장에서까지 골머리를 앓고 싶지 않은 거죠. 하지만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생각해 볼 때,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폐해를 꼬집어 지적하는 것도 결국 영화예요. 그런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알리는 과정도 필요하죠. 나는 죽을 때까지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외침이 사회적으로 환기되기를 기대하는 거죠.
-정봉주 전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1인 시위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정봉주 전 의원 팬클럽 ‘미권스’(미래권력들)에서 요청이 왔어요. 개인적으로 정봉주 의원은 잘 모르지만, 정 의원이 구속되면 한나라당 박근혜 위원장도 구속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꺼이 참여했어요.
-감독이 정치적 활동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어떤 사안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은 감독에게 일종의 책무죠.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아쉬운 게 있다면,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간다는 거예요. 물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기성세대에 눌려 사는 친구들이 많죠. 감독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들, 특히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