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연애 상담 요청 메일을 받을 때가 있다. 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내게 바라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다독거림이라고 생각하기에 다정한 어조를 유지한다. 물론 아프게 쿠욱 쑤시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략의 짐작으로 경솔하게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으며 최대한 그 입장을 헤아린 후에 하게 되는 따끔한 말이 있다.
그런 말이라도 진심을 담았기에 상대에게 납득이 된 것인지 돌아온 메일의 만족도를 보면 나쁘지 않은 연애 상담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상담 후 진행되는 상황을 알려주며 관계를 잘 유지해나간다고 말해줄 때 정말이지 잠깐의 귀 기울임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가끔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나도 사람이라 머리의 뚜껑이 열리며 증기가 뿌우하고 뿜어져 나온다. 상담이랄 게 없는 문제들을 내일 당장 지구 멸망이라도 오는 냥 심각하게 물어오면 머리는 장식이 아니라고 말을 해주고 싶어진다.
이를테면 이런 사연이다. “여자 친구에게 키스를 하려고 다가가면서 이름을 불렀는데, 그게 하필 예전 여친 이름이었어요. 저는 어떻게 하면 좋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는 건가? 그런 사소한 것 하나까지 조언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멍청함을 한껏 드러내놓고, 질문마저도 멍청하다니.
실수를 했다면 실수한 걸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대가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한다는 건 눈 앞에 펼쳐진 곤욕스러운 상황을 적당한 말로 대충 넘기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저지른 실수에 대한 변명을 나보고 지어내달라는 말인가? 이건 상담을 요청하는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내게 메일을 보내기 이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말을 하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용서를 빌고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지 ‘어떤’ 말이 그녀의 화를 풀어주는 키워드가 되지 않는다.
그런 해답은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당연히 사과를 했으니 당연히 용서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오만하다. 상대에게 무한한 애정과 배려를 바라는 건 이기적이다. 이런 일로 헤어지자고 해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실수를 한 거란 걸 인지했으면 좋겠다.
물론 심각한 잘못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조차 해결할 방법을 자기 힘으로 생각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뭔가 연애하는 자신에게 만족하는 나르시스트일뿐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는 것 같아 상담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자신은 제대로 된 고민도 하지 않은 채 툭 던지면 쉽게 답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현정씨는? 사랑과 섹스에 대한 소녀적인 판타지가 넘치지만 생각 보다는 바람직한 섹스를 즐기는 30대 초반의 여성이다.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desirable-h.tistory.com]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