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친구가 이유를 모르게 등이 결려 고생하던 끝에 약국에 갔다. 약사가 이야기를 듣더니 흔히 '파스'라고 부르는 찜질 패치를 내주었다. 그걸 가방에 집어넣고 볼일을 보러 하루 종일 돌아다니던 그는 밤이 이슥해서야 집에 돌아왔다. 혼자 사는 원룸 현관문 앞에는 배달 전문 음식점들에서 가져다 놓은 전단지들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 중에는 흔히 '스티커'라고 부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전단지를 집어들고 집안으로 들어섰고 피곤에 절어 씻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그는 잠을 깼다. 아무래도 등이 결려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낮에 샀던 파스를 찾았고 손에 집히는 대로 껍질을 벗겼다. 아픈 데가 등 쪽이라 신경을 집중해야 했지만 팔을 힘껏 뻗어 등에 붙이자 한 번에 잘 붙었다. 그는 다시 잠이 들었고 아침이 되어 한결 몸이 나아졌다는 느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근을 하기 위해 가방을 챙기던 그는 전날 자신이 샀던 파스가 약국에서 준 봉지 안에 그대로 얌전하게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등에 붙은 게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거울 앞에 다가섰다. 그의 등에 붙어 있는 '파스'에는 '짬짜면 뽁음밥 탕슉 꾼만두 전문 신속배달 용왕반점 031-000-0000'이라는 붉은 글자가 인쇄돼 있었다. 그는 등의 피부가 당기고 솜털이 빠지며 느껴지는 따끔거림이 결리는 것을 잊게 해준 모양이더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 논평했다.
"그거 *'플라시보 효과'하고는 좀 다른 개념인데. '스티커 효과'라는 말을 붙여서 학계에 제출하는 건 어때?"
"아 글쎄, 그게 뭔 학계인지는 몰라도 있기만 하면 노벨상 타고도 남을겨."
짝퉁은 보통 명품을 모방해 만드는 가짜를 말한다. 가방이나 의류, 지갑 같은 고가품이 대상이 된다. 전 세계 명품 짝퉁은 중국에서 80퍼센트 이상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년 전쯤 상하이에 무슨 행사가 있어 갔다가 저녁 때 '짝퉁시장'에 다녀온 동행들에게서 롤렉스 시계를 세 개나 받은 적이 있었다. 1000원에서 3000원까지 한다는 그 시계를 해방 전후 러시아 병정처럼 두 팔뚝에 나눠서 차고 남는 시계를 행사 기간 내내 버스를 운전하느라 수고한 중국인 기사에게 주려 했더니 그는 스스로의 팔뚝에 찬 다이아몬드 장식 피아제를 내보이며 내 호의를 단박에 거절했다.
최근에 터키 이스탄불의 어느 음식점에 혼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종업원이 다가와 자신의 최신형 아이폰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중국산이라는 그 아이폰으로는 TV를 시청할 수 있다면서 내가 한국에서도 보지 못한 '제빵왕 김탁구'를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짝퉁은 소비자가 있는 해외로 불법 수출되고 대량 유통에는 국제적 범죄조직이 개재한다. 마피아쯤 되는 '업계 거물'들이 짝퉁을 직접 팔지는 않으니 큰 가방에 짝퉁을 담아 다니는 노점상들이 주로 판매를 한다. 그들은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오는 빈곤국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외국어가 능통하고 단속에 적발되지 않도록 눈치와 걸음이 빠르며 장사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조국, 고향에서는 최고의 교육을 받고 의사나 교사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불법 짝퉁 명품을 찾아내 압수하고 불사르고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경찰 아니라 군대를 총동원한다 한들, 고향에서 굶어 죽어가는 가족이 있는 사람의 불법적인 짝퉁 판매를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짝퉁의 생산·유통·판매가 근절되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가짜 의약품은 직접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절대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아무 약이나 가짜를 만드는 건 아니다. 돈이 되는 걸 만든다. 이를테면 선진국 시장에서는 라이프 스타일 관련 의약품, 곧 비만·노화·주름·성욕감퇴 방지에 관련된 것들이 인기가 높다. 반면 생명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약으로 국제구호단체에 의해 제3세계 빈곤국가에 무상공급되는 말라리아·에이즈 같은 전염병 치료제에도 가짜가 섞이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진짜와 가짜를 겉모양만 봐서는 구별할 수 없다. 일례로 가짜 비아그라를 만드는 데 진짜 약이 갖고 있는 특유의 빛깔을 내기 위해 도로용 페인트를 쓴다. 이런 도료에는 납처럼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들어 있다.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비아그라는 100% 가짜라고 한다. 또한 처방이 있어야만 복용할 수 있는 스테로이드제 같은 특정성분이 과도하게 들어 있어 일정기간 동안에는 큰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치명적인 부작용이 따른다. 가짜약품 생산으로 유명한 중국에서만 한해 2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다.
어떤 친구가 있었다. 동남아의 항구도시에서 오래도록 살아오던 중에 특별한 원인도 모르는 채 몸이 시름시름하고 잔병치레가 잦았다. 병원에 가보았으나 별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마침 거래관계로 알게 된 사람이 용한 한의원이 있다고 소개해 주었다. 그가 한의원 간판이 걸린 곳에 들어서자 한의사처럼 가운을 입은 남자가 "몸에 늘 기운이 없고 가끔 어지럽고 철이 바뀔 때마다 감기에 걸리는데 잘 낫지도 않지요?" 하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남자는 그가 고향을 오래 떠나 있는 바람에 생긴 증세라고 족집게로 집어내듯 진단을 내리고 고향에 돌아가기만 하면 씻은 듯 나을 것이라고 했다. 망설이는 그의 표정을 본 남자는 벽장에서 종이상자를 꺼냈다. 상자의 뚜껑을 열자 얇은 한지에 싸인 거무튀튀한 사슴뿔 같은 물건이 나왔다.
"이거 한국에서 누가 선물로 가져온 겁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폴란드의 고향 흙을 가지고 망명길을 떠났다는 이야기 아시지요? 이건 나무뿌리라서 깊은 땅속 흙의 기운을 흡수한 거라서 약성이 엄청나게 강합니다. 다른 분들이 몇 번 달여서 드셨지만 처음하고 달라진 게 별로 없어요. 가져가시거든 정성껏 달여서 하루 세 번 공복에 드세요."
그는 상자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와 뿌리가 들어갈 만한 큰 약탕기를 구해서 남자가 말한 대로 계피·감초·대추·오미자·구기자 같은 부수적인 약재와 함께 물에 완전히 잠기도록 넣은 뒤 하루 넘게 푹 달였다. 우러나온 물을 냉장고에 넣고 하루 세 번 공복에 나누어 마셨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고 나니 정말 몸이 거뜬해진 것 같았다. 그는 상자를 다시 원래대로 포장해서 남자를 찾아갔다.
"선생님 덕분에 병이 다 나았습니다. 정말 영험한 나무뿌리 같군요.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증세로 고생할 텐데 그 사람들한테 쓰시지요. 사례를 조금 넣었습니다. 뿌리치지 마시고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남자는 손을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착각을 해서 엉뚱한 걸 드렸습니다. 이거 사실 그냥 플라스틱입니다. 누가 무슨 사슴뿔 모형을 만들어서 가져온 건데 제가 헷갈려서 잘못 보관하고 있다가 그만…. 진짜 약성 좋은 나무뿌리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여기 있네요. 가져가서 잘 달여서 드셔 보세요."
사람이기에 실수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뿐인 생명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실수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건 범죄다. 생명에 관한 범죄는 고의든 과실이든 엄중 처벌해야 한다. 소설가
※용어설명 *플라시보 효과
'플라시보'란 말은 '마음에 들도록 한다'는 뜻의 라틴어이다. '플라시보 효과'는 약효가 없는 가짜 약을 진짜 약으로 가장해 환자에게 복용시킬 때 실제로 환자가 회복되는 일종의 심리적 효과다.
성석제는?
시인 출신으로 소설에 뛰어들어 '이야기꾼'이란 별명을 얻었다.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토속적 정감과 위트가 섞인 글을 자주 썼다.1990년대부터 '소풍'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등 다양한 소설과 에세이로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최근에는 음식 관련 에세이집들을 펴내며 음식과 사람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