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미국 뉴욕의 한 경매에서 만화책 뭉치가 약 40억원의 거금에 팔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경매 의뢰인은 세상을 떠난 종조부의 지하실을 청소하다 354권의 만화책을 발견한 후 경매에 내놓아 대박의 주인공이 됐다. 이 중 권당 최고가는 배트맨의 데뷔작이 담긴 '디텍티브코믹스 제27권(1939년)'으로 52만3000달러(약 5억9000만원)에 팔렸다. 한국에서도 웬만한 1950~60년대 만화책 한 권이 100만원을 넘고, 희귀본은 500만원을 호가하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됐다. 과연 내가 갖고 있는 만화책은 얼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는 걸까.
'각시탈' '객주'도 귀한 몸
만화책을 두고 말하자면 상전벽해다. 과거엔 5월만 되면 만화책이 '불량만화'란 이름으로 불태워지곤 했으나 지금은 '보물' 대접을 받고 있다. 어린 시절 만화에 열광한 세대가 사회 지도층이 되고 부를 축적하면서 만화 수집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교수·기업가 등의 직업을 가진 이들은 자신이 어릴 적 즐기던 만화를 구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인터넷 경매에서 희귀 만화가 나오면 권당 100만원을 내지를 수 있는 수집가가 1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50대 중반의 기업가 K씨는 1940년대부터 70년대의 희귀 만화를 4000권 이상 모았다. 특히 김종래의 1950년대 대표작 '엄마찾아 삼만리' 상·하권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K씨는 "어릴 적 보던 만화로 추억을 찾고 싶었다. 만화를 모은 게 20년 가까이 된다"고 밝혔다.
386세대가 즐기던 크로버문고와 소년중앙·어깨동무·새소년 등의 잡지도 귀한 몸이 됐다. 권 당 몇 만원에서 몇 십만원에 거래된다. 지난 2002년 복간된 이두호의 '객주'는 권당 정가가 7800원이지만 품절된 후 중고품 가격이 약 2만5000원으로 뛰어올랐다. 허영만의 1970년대 명작 '각시탈'은 아예 물건이 나오지 않는 품목에 올라있다.
좋은 작품 가리는 안목 있어야
오래되었다고 다 귀한 것은 아니다. 같은 시대의 만화책이라도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김산호의 '라이파이', 박기정의 '도전자', 방영진의 '약동이와 영팔이'는 가격 차이가 크다. '라이파이'는 현재 원본이 채 20권도 남아있지 않아 권당 500만원을 호가한다. '약동이와 영팔이'는 수년 전 40권 전권이 8000만원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도전자'는 내용이 탄탄해도 소장자가 많아 권당 50만원 전후에 불과하다.
만화 수집가 오경수씨는 "내용이 좋은 작품이 고가일 수밖에 없다. 안목이 없으면 제대로 된 작품을 수집할 수 없다"면서 "책의 보존 상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전했다.
만화앱으로 편리하게
추억의 만화를 다시 보고 싶다면 구입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즐겨보던 1970년대~90년대 만화도 책으로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올해 추억의 만화들이 태블릿PC에 탑재돼 만화앱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태블릿PC를 들고 다니면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만화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손기환 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부 교수는 "만화책도 한 나라의 문화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만화책도 언젠가는 '보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