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컵케이크 카페에서 한유미(30·KGC인삼공사)·한송이(28·GS칼텍스) 자매를 만났다. 달달한 컵케이크가 있는 조용한 카페는 자매가 경기를 마치고 만나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이다. 자매가 같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리고 프로배구 선수가 돼 함께 코트에서 뛴 시간이 올해로 17년째다. 그 중 7년은 같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한 동생은 고교 시절 언니의 키를 추월했고, 언니가 지키던 국가대표 레프트 자리를 대신했다. 언니는 학창 시절 귀찮게 따라다니던 동생이 국내 수위를 다투는 공격수로 성장한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자매가 컵케이크 카페에 모이는 이유
-자매가 처음으로 컵케이크 카페에 함께 왔던 게 언제였나.
송이 "중·고등학교 때는 지금처럼 언니와 친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스무 살까지는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언니가 운동하고 힘드니까 너무 예민해서 말 붙이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내가 프로에 오고 나서부터 친해졌다. 컵케이크 카페에 같이 왔던 것도 프로가 되고 난 다음이니까 사실 몇 년 안됐다."
유미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초등학교 때는 송이랑 같이 다니는 게 정말 싫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소풍갈 때는 특히 더 귀찮았다. 다른 친구들은 자유롭게 노는데 나는 송이를 챙겨야 하니까. 그때는 '내 소풍을 송이가 망친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예민했던 게 사실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훈련량이 훨씬 많았는데,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이 너무 부실했다. 배가 고파서 예민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달콤한 컵케이크를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그 기분… 이해가 된다. 나도 군대에 있을 때 춥고 배고파 초코파이 생각이 많이 났다.
유미 "그게 도대체 무슨 기분인가? 군대에 가보지 않았으니 할 말은 없지만 비유가 좀… (웃음). 어쨌든 단 음식을 좋아하긴 한다. 경기장 가까이에 컵케이크 카페가 없으면 아무 카페나 가서 수다를 떤다. 중요한 건 항상 커피와 함께 빵이나 케이크를 먹는다는 거다. 프레즐, 허니 브레드, 조각 케이크, 베이글…"
송이 "그냥 밥 먹는 거라고 보면 된다."
유미 "맞다. 그래서 우리가 오면 카페 사장님들이 좋아하신다."
-단 음식을 많이 먹으면 체중 관리도 어려울 텐데.
송이 "밥 먹고 간다. 요즘은 고기에 꽂혔다. 종류는 상관 없고 일단 고기를 먹어야 든든하다. 카페에 가는 건 그 다음이다. 체중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나도 살이 안찌는 체질이지만 언니는 더 심하다. 언니는 너무 살이 안쪄서 중·고등학교 때 살찌는 약도 먹었다."
유미 "살찌는 약은 아니고 식욕을 돋우는 한약을 먹었다. 고등학교 때는 살이 너무 빠져 자기 전에 '살찌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다."
송이 "어디선가 백만 안티 양성되는 소리가…"
유미 "사실이 그런 걸 어쩌겠나.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땐 나름대로 힘들었다. 프로에 온 뒤에는 잘 먹고 운동하게 돼 좋다. 송이가 어렸을 때는 정말 입이 짧았는데 요즘은 다 잘 먹더라. 몇 년 전부터는 곱창이나 돼지 껍데기도 잘 먹는다."
- 학창 시절 서먹했던 자매가 어떻게 이렇게 가까워졌나.
유미 "어린 줄만 알았던 송이가 프로가 됐다. 그때 다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무대에서 뛰다 보니 고민도 비슷하고 만나는 날도 많아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친해졌다."
송이 "확실히 프로에 와서 언니가 나를 대하는 게 달라졌다. 그리고 언니가 2003년 월드그랑프리에서 무릎을 다쳐 1년 반 동안 재활하느라 힘들어 했는데 그때 서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완전' 가까워진 시기였다."
-소풍을 방해하던 동생이 국가대표가 됐을 때 기분이 남달랐겠다.
유미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송이가 프로가 됐을 때 느낌이 새로웠다. 하지만 국가대표는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실력이 좋았고 가능성도 많았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지금 김연경(24·페네르바체)이 최고라고 하지만 송이도 그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고 있다."
-언니가 이렇게 동생을 끔찍하게 생각하는데 동생은 올 시즌 언니의 스파이크를 두 번이나 막았다.
송이 "그랬나? (웃음) 언니 스파이크는 파워가 다르기 때문에 막는 '손맛'이 있다. (웃음) 그래서 막고 나면 기분이 좋은데, 지금 생각하니 조금 미안하다."
유미 "미안할 것 없다. 다른 사람한테 막히는 것보단 동생한테 막히는 게 낫다."
◇언니 쉬는 일 년… "제가 더 힘들었어요"
-언니가 재작년 해외 진출이 무산돼서 일 년 가까이 쉬었다.
송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갑자기 '부양 가족'이 하나 늘었다. 언니가 한 해 쉬면서 수입은 없었지만 쓰는 건 그대로였다. 음식을 먹으러 가면 항상 내가 내고 언니의 대학 등록금도 내가 내줬다. 한 번은 친구가 결혼한다고 남편을 소개시켜 줬는데 넷이 밥을 먹고 계산을 할 때가 되니 나를 떠밀더라. 친구 남편이 낸다는데도 극구 말리고 나보고 내라고 하니 참 당황스러웠다."
유미 "축하해 주는 자리라 내가 내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웃음) 송이가 힘들었을 거 안다. 다 사주고, 싱가포르 여행도 같이 갔는데 경비를 다 송이가 냈다. 송이한테 '보험 들었다고 생각하라'고 말해줬다. (송이에게)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다 나한테 말해"
-(한유미에게) 배구를 시작하고 나서 부상을 입었을 때 말고는 공을 놓은 시간이 없었을 텐데, 일 년 동안 쉬면서 뭘 했나.
유미 "일단 운동은 계속 했고 남는 시간에 하고 싶은 걸 많이 해봤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바리스타가 돼 보려고 커피 공부도 하고, 요리도 배우고…"
송이 "언니가 커피와 요리를 배워 난 더 힘들었다. 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도 않는데 집에 가면 커피를 마시라고 강요했다. 어떤 날은 파스타를 해줬는데 정말 맛이 없어 세 입 먹고 내려놨다."
유미 "오해다. 송이가 내가 사오라는 재료가 아닌 다른 걸 사와서 망쳤다."
송이 "우리 엄마가 정말 음식에 관대한 편이다. 그런데 언니의 파스타를 먹다가 '사람 음식이면 다 맛있다고 생각하는 강아지에게 한 번 줘보자. 다신 달라고 안 하게'라고 하더라. 재료가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맛이 없었다."
유미 "… 취향 차이다. 난 맛있었다."
-쉬는 동안 언니의 남자친구를 동생이 소개시켜줬다고 들었다. 평소에 어디서 데이트를 하나.
유미 "소개시켜준 건 아니고 같이 가는 모임에 갔다가 만났다. 데이트는 남들과 똑같다.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보고. 아, 얼마 전엔 경복궁에 갔었다."
송이 "갑자기 경복궁을 왜 가. 외국인이야?"
유미 "그리고 맛집을 찾아다닌다. 명동이나 이태원 이런 곳. 이태원에 있는 순대국밥, 막창, 대창 이런 거 먹고 후식으로 컵케이크 카페.(웃음)"
-이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한 시즌을 거의 마쳤다. 언니의 소속 팀 KGC인삼공사의 정규시즌 우승이 확정됐는데.
송이 "우리(GS칼텍스)가 못할 거면 언니 팀이 우승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도 잘해 왔지만 마지막까지 힘내 더 잘했으면 좋겠다. 응원할 테니 우승 보너스로 맛있는 거나 많이 사줬으면 좋겠다."
유미 "매년 시즌이 끝나면 더 잘했던 사람이 선물을 하나씩 사줬다. 지금까지 두세 번을 제외하고 거의 내가 받았는데 올해는 내가 사주겠다. 지금까지 받은 게 만만치 않다. 선글라스, 화장품, 바지… 좋은 걸 해줘야겠다."
컵케이크 카페는 '배구'라는 공통점 때문에 오히려 더 가까워지지 못했던 자매를 만나게 해주는 장소였다. 또 힘든 운동과 부상과 계약 문제 등으로 상처받은 자매의 마음을 부드러운 촉감과 달콤한 맛으로 치유시켜주는 공간이었다. 언니가 가장 먼저 고른 컵케이크는 애플시나몬(사과케이크·시나몬생크림)이고 동생은 레드벨벳(코코아케이크·크림치즈버터크림)이었다. 언니의 컵케이크가 동생의 것보다 두 단계 더 달았다. 언니는 "힘든 날일수록 더 달콤한 케이크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