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훈(32·LG)은 21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의 시범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전날(20일) 두산전에서 김선우의 투구에 오른 손가락을 맞았기 때문이다. 경기 전 만난 그는 "약간 부었지만, 괜찮다. 조금 쉬면 된다"며 미소지었다.
모처럼의 휴식. 벤치에서 마음 편하게 쉬면 좋으련만 정성훈의 시선은 줄곧 두산의 중심타자들에 고정돼 있었다. 4번 타자 김동주의 스윙과, 최준석의 당당한 체격을 살폈다. 그는 "요즘 다른 팀 4번에 시선이 간다"고 말했다.
정성훈은 이번 시즌 LG의 4번타자다. LG에는 박용택·이진영·이대형·이병규(9번) 등 왼손 타자가 유난히 많다. 김기태 LG 감독은 "4번에 오른손 타자를 배치해 타선의 중심을 잡겠다"며 정성훈을 유력한 4번 타자 후보로 낙점했다.
정성훈은 지난해 주로 3번이나 5번 타순에서 활약했다. 그는 "그동안 내가 4번 타자를 맡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페이스가 정말 좋을 때도 3번 타순까지가 적당하다고 여겼다"고 했다.
사실상 처음 맡아보는 붙박이 4번타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정성훈은 "책임감을 느낀다. 사실 나는 이전까지 '책임'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그걸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좌타자가 많은 팀에서 우타자인 내가 중심이 된다. 매 타석이 중요한 것이다. 책임감을 느끼는 동시에 즐겁게 도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대팀 거포들을 살피게 된 건 새롭게 얻은 습관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두산은 김현수·김동주·최준석의 3연속 안타에 힘입어 1회에만 4득점 했다. 그는 "주로 폼이나 상황별 대처 요령을 보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남들처럼 풀스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체중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고 귀띔했다. 정성훈은 세 차례 시범경기에서 7타수 1안타를 기록중이다.
남에 타격이 눈에 들어올 때는 김무관 LG 타격코치의 말을 떠올리곤 한다. 김무관 코치는 지난해까지 롯데 타격코치로 있으면서 이대호(30·오릭스)를 지도했다. 정성훈은 "코치님께서 '이대호가 '조선의 4번 타자'라면, 정성훈은 'LG의 4번 타자'다.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네 타격을 하라'고 하셨다"며 "결국 내 스윙이 중요하다. 이번 시즌에도 즐겁게 '정성훈다운' 타격을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