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명문 뉴욕 양키스에서 필승계투로 활약했던 프록터(35·두산)도 긴장했다. 3-4로 쫓기는 상황, 9회초 무사 1루. 삼성 채태인(30)에게 던진 변화구가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바운드됐다. 고졸 5년차에 프로야구 1군 첫 경기에 나선 포수 최재훈(23)은 온몸으로 공을 막아냈다. 그리고 또 변화구 사인을 냈다. 공이 바운드 될 때마다 프록터가 움찔했다. 최재훈은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투수가 자신있게 던진 공을 포수는 다 막아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더구나 당시 삼성 타자들은 직구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제가 받기 편하려고 직구 사인을 낼 수 없죠." 최재훈은 대담하게 프록터를 이끌었다. 18일 잠실 삼성전 종료 직후, 프록터와 최재훈은 포옹을 했다.
깜짝 선발 포수
두산 주전포수 양의지(25)는 17일 잠실 삼성전 1회말 상대선발 장원삼의 공에 맞아 왼 종아리 타박상을 입었다. 이날 2회부터 9회까지 8이닝을 책임진 최재훈은 18일 '선발 포수'로 나섰다. 2008년 덕수고를 졸업한 그는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고 신고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그해 6월 정식계약을 맺었지만 1군 무대는 멀기만 했다. 2008년 대수비로 단 한 경기 출장. 2010년과 2011년 경찰야구단에서 군 복무하며 2군 경기 경험을 쌓은 그는 2012년 개막엔트리에 포함됐다. '신고선수 신화 1막'의 완성.
대범한 변화구 승부
2막이 펼쳐졌다. 양의지의 부상으로 갑작스럽게 선발 출장한 최재훈은 대범하게 1군 선수들과 호흡하고, 맞섰다. 18일 두산 선발 이용찬은 이날 103개의 투구 중 39개를 포크볼로 채웠다. 최재훈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공을 자신의 몸 앞에 떨어뜨렸다. 이용찬은 "청주 경기(12일 한화전 4⅔이닝 10피안타 5실점)서 직구 위주로 던지다 맞았다. 이번에는 변화구 비율을 높였다. 어려운 공이 있었을 텐데 재훈이가 잘 막아줬다"고 했다. 최재훈은 "용찬이형 변화구가 워낙 좋았다. 좋아하는 공을 던지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투수를 편하게 해주는 것. 포수의 기본이다. 하지만 용기가 필요하다. 최재훈은 "블로킹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마무리 프록터와의 호흡에서도 최재훈은 대범함을 유지했다. 9회 손주인과 채태인의 타석에서 블로킹 4개를 했다. 그래도 또 변화구였다. 최재훈은 "이기고 싶었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변화구 승부였다"고 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최재훈이 직접 잡아냈다. 9회초 2사 2루, 진갑용의 타석 때 2루주자 손주인이 3루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최재훈은 지체없이 2루로 공을 뿌렸다. 태그 아웃. 마운드에서 주저앉은 채로 이 장면을 지켜본 프록터는 곧바로 최재훈에게 달려가 '격한' 포옹을 했다.
또 한번의 신고선수 신화?
수비 때는 침착했던 최재훈은 타석에서는 활발한 모습을 선보였다. 0-0이던 4회말 1사 3루서 최재훈은 상대선발 윤성환의 114㎞짜리 커브를 밀어쳐 우전 적시타를 쳐냈다. 이날의 결승타. 최재훈은 "이명수 코치님께서 바깥쪽 공을 노리라고 하셨다. 직구 타이밍에 변화구가 왔는데 '이거다' 싶더라"고 했다. 당시 최재훈은 1루로 뛰어가며 오른손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경기를 마친 최재훈은 '효도하고픈 아들'로 돌아갔다. 생애 첫 방송 인터뷰. "부모님께 영상편지를 보내달라"는 방송사의 요청에 최재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최재훈은 "갑자기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셔서 울컥했다"고 했다. 카메라 밖에서 전한 편지.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에서 저를 이렇게 키워 주신 부모님. 아직 제대로 해 드린 게 없습니다. 오늘(18일) 조금 효도했네요. 앞으로 더 많이 효도하고 싶어요." 최재훈이 효도할 수 있는 기회는 더 자주 찾아올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