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한국시간) 독일 뮌헨 알리안츠아레나에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과 네덜란드 대표팀의 친선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당시 뮌헨 구단 관계자는 그 경기를 '로번 매치'로 불렀다. 2010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로번이 근육이 좋지 않은 상태로 대표팀에 차출됐다가 결국 부상을 당해 2010-2011시즌 분데스리가 초반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뮌헨 구단이 네덜란드축구협회에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했고, 고심하던 네덜란드축구협회가 수익금을 뮌헨 측이 모두 갖는 조건으로 친선경기를 제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기장 분위기가 이상했다. 명색이 로번 매치인데, 네덜란드대표팀 멤버로 후반에 그라운드를 밟은 로번이 볼을 잡을 때마다 홈 팬들이 일방적이고 적대적인 야유를 보냈다. 축구 선수를 연고지역의 명사로 여기는 유럽 축구 문화에서 홈팀 선수를 야유하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뒤에 들으니 경기가 끝난 뒤 네덜란드 대표팀 멤버들이 한 목소리로 로번에게 "이런 팀에서 당장 나오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로번 매치’ 사흘 전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의 여파였다. 당시 로번은 첼시와의 경기 도중 페널티킥 키커로 나섰지만, 골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결국 승부차기 끝에 첼시가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으니 뮌헨 팬들의 분노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최근에 다시 만난 뮌헨 구단 관계자는 "로번에 대한 팬들의 분노가 생각보다 깊다"고 했다. 이번 시즌 더블(챔피언스리그와 정규리그 2관왕)을 놓친 '주범'으로 로번을 지목했다는 이야기였다. 로번은 정규리그 우승팀 도르트문트와의 4월 맞대결에서도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전담 키커인 마리오 고메즈 대신 굳이 자신이 차겠다고 우겼다가 골을 넣지 못해 망신을 당했다. 결국 뮌헨은 0-1로 졌고, 도르트문트와의 승점 차가 3점에서 6점으로 벌어졌다.
로번은 페널티킥에 맞지 않는 선수다. 페널티킥은 일반적인 축구 경기와는 전혀 다르다. 서로 다른 종목으로 봐도 무방하다. 실력보다는 심장이 더 중요하다. 생각이 많고 킥이 강하지 않은 로번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문제는 뮌헨 동료들 중 로번의 잘못된 욕심을 제어할 선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승부차기 당시 뮌헨은 세 번째 키커로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를 내세웠는데, 선수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고 한다. 모든 선수들이 차지 않겠다고 버텨 어쩔 수 없이 페널티 스폿에 섰다고 한다. 우승컵이 걸린 절체절명의 순간에 승부차기 순번조차 정해놓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울리 회네스 뮌헨 구단주는 챔스 결승전이 끝난 뒤에 "우리 팀에는 욕심쟁이 아니면 겁쟁이만 있다. 마테우스처럼 굳은 심지의 소유자가 필요하다"고 탄식했다.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면 결국 화가 되어 돌아온다. 챔스 결승전 당시 로번의 곁에는 무려 10명이나 되는 동료가 있었지만, 누구도 로번의 '과한 욕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팀 스포츠의 묘미이자 함정이다. 오스트리아에서.
김기동《일간스포츠 객원 해설위원》 정리=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 김기동은… K-리그 통산 501경기에 출전해 39골 40도움을 기록했다. K-리그 필드 플레이어 최다경기 출전 기록을 갖고 있는 '그라운드의 철인'이다. 93년 유공에 입단해 18년 동안 그라운드를 뛰다 2011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은퇴한 뒤 선진 축구를 두루 경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