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경마가 유행하기 시작한 때는 19세기 중반이다. 당시 나폴레옹 3세는 파리를 근대 도시로 만들기 위해 대규모 개발 사업을 벌였다. 좁은 골목길을 밀어버리고 거대한 대로를 건설하는 것으로 지금의 격자 무늬식 도시구획을 실행했다. 이를 통해 황제는 파리를 근대 도시로 새로이 성형했다.
볼로뉴 숲 또한 그 대상이 됐는데 넓고 아름다운 공원으로 새로 꾸민 숲 안에 파리 사람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레져 시설들을 갖추었다. 나폴레옹 3세는 영국의 인기 스포츠였던 경마를 들여오기 위해 이 숲 안에 대규모 관중석을 갖춘 롱샹경마장을 조성했다. 경마에 대한 나폴레옹 3세의 열정은 경마 규칙을 정하는데도 관여할 정도로 열렬했다.
황제의 주도로 조성된 근대적이고 세련된 롱샹경마장은 1857년에 개장한다. 인상주의의 거장인 에드가 드가가 경마를 그림의 주제로 삼기 시작한 때도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롱샹경마장이 조성된 지 8년 뒤인 1865년 프랑스 경주마가 영국에서 열린 중요한 경마대회에서 우승하는 사건을 계기로 파리의 경마산업은 수천 명의 관중을 끌어 모으며 대도시 파리의 주요한 볼거리로 부상한다.
'관중석 앞에서'는 드가 특유의 화면 구성이 돋보인다. 오른쪽 전경에 있는 말머리를 과감하게 잘라낸 구성이 마치 무심코 찍은 스냅샷처럼 보이지만 이는 드가가 세심하게 고려하고 계산하여 구성한 화면이다.
그림 속 화면은 늘씬한 다리를 가진 경주마들을 탄 기수들이 색색의 파라솔을 든 관중들 앞을 행진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멀리 긴장한 말이 신경질적으로 날뛰는 모습을 지나 더 멀리에 있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공장굴뚝으로 시선이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구성되었다.
드가는 사실 경마장과 경마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경마가 아닌 다른 것들에 주목했다. 드가에게 경마는 파리인의 새로운 여가활동으로 부상한 스포츠로 새로운 동작과 장면을 관찰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그는 항상 과거지향적인 역사화가 아닌 자기 시대를 보여주고자 했다. 드가는 “근대의 작품은 ‘작은 구석, 한 순간, 파편’을 그릴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드가의 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지는 근대인은 항상 고립된 개인들이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기수들 또한 서로 기수들이라는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집단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서로 시선조차 교환하지 않는 개인들로 그려졌다. 그들이 탄 말들 또한 향하고 있는 방향이 제각각이다. 왼편에 그려진 관중들도 한 무리의 집단이라기보다 각자의 세계를 가진 도드라지고 고립된 주체들로 그려져 있다.
드가는 몰입되지 않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의외의 곳에서 자기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근대의 본질적인 면을 발견했고 사실주의자처럼 그림으로 기록했다. 드가의 시선으로 그려진 경기 전 긴장한 기수들과 말들, 그리고 경마경주를 보기 위해 모여든 파리인들의 모습은 개인들로 파편화된 근대인의 초상으로, 이 하나의 장면에서 파편화된 우리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양희원(34) KRA한국마사회 교관
드가는 이 작품 외에도 많은 수의 경마 관련 작품을 그렸다. 덕분에 우리는 드가를 통해 19세기 중~후반의 유럽 경마를 볼 수 있는데 과거 유럽의 경마와 현재의 경마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다. 현재의 경마와 당시 경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등자로 볼 수 있다. 그림속 경마기수의 등자는 현재의 승마선수들이 사용하는 길이로 등자가 맞춰져 있다. 하지만 현재 경마 기수의 등자 기르는 극한적으로 짧다. 경마가 발전하면서 몽키 스타일의 승마법이 개발 됐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기수들이다. 기수들은 하나 같이 안전장구(헬멧·프로텍터) 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
경주마의 장비도 심플하다. 기본적으로 복잡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인데 말에 되도록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라면 그림 속 말이 경주에 출전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기수는 무조건 출전 불가다. 안전장비 착용 의무를 위반 했기 때문이다.
드가가 생존한 시기에는 지금처럼 까다롭게 경주 운영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까다로운 규정을 모두 통과해야 경주에 참가할 수 있다.
말들은 품종은 모두 서러브렛이다. 전형적인 서러브렛으로 어린말들이다. 말들은 상당히 날씬하고 군살이 없는 체형을 가지고 있는데 경주를 위해 탄생한 서러브렛의 체형적 특징이다. 어린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가장 뛰쪽에 위치한 말이 한쪽으로 튀는데 이런 행태는 어린말들의 특징이다. 또 꼬리를 가위로 자른 것 처럼 잘랐는데 현 경주마와는 다른 관리법이다.
한편 유럽에서 경마가 활성화된 곳은 영국이고 나머지 유럽국가들에서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유럽 말산업의 대표격인 독일에서 경마는 크게 쇠퇴했다. 이들이 경마를 하지 않는 이유는 생산자 입장에서 승용마 생산 육성을 통해 얻는 수익이 경주마 생산보다 월등히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