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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남박사의 말이야기 109.승마의 사회학
승마에서 있어서 말은 보수 성향을 띠면서 좌파에, 기수는 진보 성향을 띠면서 우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사회과학에서 보수란 사회제도나 질서 혹은 조직 등의 변혁을 요구하지 않고 유지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 진보는 그것의 변화와 개혁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개념을 정리하고 있다.
따라서 보수는 현재를 중요시하는 탓에 현실주의자나 다름없다. 이에 반해 진보는 과거나 현재 보다는 미래에 더 관심을 두는 쪽이다. 또한 좌파는 집단에, 우파는 개인에 더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보수 가운데 일부는 미래에 중점을 두는 경우도 있다. 소위 열린 보수다. 하지만 또다른 일부는 미래로 향하기는 커녕 과거로 회귀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런 유형이 수구꼴통이다. 그래서 보수의 반대개념은 진보가 아닌 수구꼴통인 듯 하다.
그렇다면 이런 개념속에서 말은 왜 보수좌파에, 그리고 기수는 진보우파에 가까울까? 말은 지극히 현실주의 동물이다. 자신의 생명 즉 안전에 문제가 없으면 그져 배불리 풀을 뜯고 한가롭게 햇빛을 즐긴다. 말에게는 미래가 없다. 목표도 없다. 미래를 위한 삶이 아닌 늘 현실 그 자체에 만족하는 야생생활을 하는 것이다. 굳이 현실의 환경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그 환경에서 떠나버리고 만다. 변혁을 꿈꾸지 않는다. 떠나는 그 자체도 ‘미래를 위한 떠남’이 아닌 ‘또다른 현실의 선택’일 뿐이다.
조교사가 말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기위해 목표를 정해놓고 아무리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해도 말은 그 훈련을 위해 미래를 위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목표달성을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말은 보수성향이 깊다.
그런가하면 말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군서성을 지니고 태어난 탓에 말 자신보다는 집단에 더 익숙해져 있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것이 풀을 뜯고 생명을 지키는데 훨씬 유리하다. 무리에서 이탈해 개인의 삶으로 돌아가면 그것은 곧 죽음과도 같다는 것을 학습을 통해 알고 있다. 말이 좌파성향을 띠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말에게도 열린 보수가 있다. 조교사로부터 칭찬을 듣게 되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위해 적극적 혹은 긍정적 노력을 한다. 이처럼 미래지향적 노력을 하는 말은 열린 보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말등위에 있는 기수는 진보성향을 수 밖에 없다. 어느 순간 말이 요동치거나 갑작스럽게 튈 수 있는 상황을 늘 염두에 두고 일종의 돌발적 상황에 대비하면서 기승하기 때문이다. 몸은 말등위에 있지만 생각은 미래에 가 있는 상태다. 그래서 기수는 기승전 말에 대한 특성과 성격 그리고 사고전력 등을 살펴보곤 한다.
기수는 다른 기수와의 집단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기수 자신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비록 말이 뒤집혀 전복사고로 죽어가는 말의 생명보다 자신의 생명을 우선시 하는 경우는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집단보다는 그리고 말보다는 기수 개인을 먼저 챙기기 때문에 기수는 진보우파에 가까답고 할 수 있다.
기수 가운데 일부는 말의 미래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말이 가지니고 있는 현재의 능력을 살피되 말을 칭찬(혹은 당근)하고 배려하면서 능력을 끌어올리는 즉 현재와 미래에 대한 균형 감각을 갖고 기승하는 소위 ‘합리적 진보’도 있다.
반면 기수 개인의 자유로움만을 추구하는 이른바 인간의 지위로서 말을 특권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극우파’ 기수도 없지 않다. 말과 기수가 인마일체를 이루기위해서는 열린보수의 말과 합리적 진보의 기수의 만남이 가장 이상적이다. 수구꼴통의 말과 극우파 기수의 만남은 양쪽이 피곤할 따름이다.
남병곤 제주대 석좌교수(승마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