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계세마도'는 작자를 알 수 없는 그림이다. 몇 년 전 한 컬렉터가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 조선시대 유물과 그림들을 다량 수집해 다시 되찾아 온 적이 있었다. '류계세마도'는 그 당시 함께 한국으로 귀향한 그림으로 화풍과 기법으로 보아 윤두서의 실경 배경의 말그림 이전의 조선 중기 회화로 추정된다고 한다.
버드나무 가지가 드리워진 냇가에서 말을 씻기는 그림이라 하여 제목이 '류계세마도'이다. 버드나무 가지는 아직 풍성히 자라나지 않았고 다른 나무의 잎들도 무성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어느 봄날의 풍경일 것이다. 그림의 오른쪽에 배치된 바위와 구름 너머로 대갓집 지붕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집 소유의 준마들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체구가 큰 준마 9마리를 목동 8명이 붙어 씻기고 있는 장면으로 목동들은 모두 바지를 벗고 말과 함께 물에 들어가 열심히 말들을 씻기고 있다.
중앙부에 위치한 흰 바탕에 얼룩무늬가 있는 말은 물에 들어가 씻는 것이 싫은지 두 귀를 뒤로 넘겨 고개를 쳐들고 저항하려 하고 있고 이를 한 목동이 제지하고 다른 목동은 그 틈에 등을 밀어주고 있다. 앞쪽 검은 말은 다 씻었는지 목동의 손에 이끌려 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물을 좋아하는 말들은 한 목동이 두 마리를 동시에 이끌고 있기도 하다. 왼쪽편이 목장인지 나머지 말 한 마리가 목동의 손에 이끌려 나무다리를 건너려 하고 있다. 말들이 하고 있는 다양한 자세며 동세에 대한 묘사가 아주 자연스럽고 훌륭하며 풍경에 대한 묘사 또한 중국에서 들여온 화본을 제대로 익힌 화풍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화원 소속의 프로 화가의 솜씨로 보인다.
회화에서 말은 주로 문인 사대부나 지배계층이 자신의 처지나 치세를 상징하는 소재로 많이 쓰인다. 특히 준마를 알아보는 백락이 있어 천리마가 존재한다는 백락의 천리마 고사처럼 말이 목동과 함께 나오는 그림은 인재를 알아보고 잘 등용하는 왕의 능력과 연관되기도 한다. 만약 이 그림의 주인이 왕이었다면, 그는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시대를 태평성대로 보지 않았을까 한다. 평탄한 시대의 말들은 군장을 하거나 전력질주하기 보다는 쉬고 있거나 씻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왕은 이 그림을 보면서 스스로를 태평성대 동안 신하들을 키우고 보살피는 덕이 많은 군주라고 여기며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즐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양희원(34) KRA한국마사회 교관
한국화 말 그림 중에서 현실적인 그림이다.
과거에는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장치가 많지 않아서 직접 말을 끌고 냇가에 가서 말을 씻길 수밖에 없었다. 또 말 9마리에 사람이 8명이다. 그림에서 한사람이 두 마리 말을 잡아주면서 말을 관리하고 있다. 이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말 두 마리를 한 사람이 동시에 씻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겁이 많은 말은 사람이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작은 소리에도 달아날 수 있다. 말이 만약 놀라서 달아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장에서도 굴레가 풀린 말에 다시 굴레를 채우려면 전문가라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비된다. 말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말 닦는 시간과 장소가 약속돼 있어서 마부들이 서로 협력해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풍경은 말의 소유주가 한 명이거나 또는 군대·말을 사용하는 기관에 속한 말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이 옷을 벗고 있는 것도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의 말을 닦는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끌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복장을 갖추었으나 정작 냇가에 있는 사람들은 전체 또는 하의를 벗었다. 말을 씻기기 위해서는 물에 들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옷을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장소는 한국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점박이 말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는 있으나 비율이 9마리 중에 3마리나 될 정도로 흔하지는 않다. 또 말은 이전까지 보았던 조선시대 말보다는 확실히 크고 풍만한 느낌이다. 사람과의 비례로 봐도 이 말은 우리나라의 조랑말로 볼 수 없다. 최소한 경주마로 활용되고 있는 서러브렛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