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가뭄 끝에 드디어 장마가 시작됐다. 1980년대만 해도 장마철엔 전국 곳곳에 홍수가 발생했다. TV에서는 하루 종일 홍수특보를 방송했다. 서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습 침수구역마다 어김없이 지붕 위에 올라서서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시민들이 있었다.
1993년 무렵, 뉴저지 후암정사에 머물다 잠시 한국에 나왔을 때의 일이다. 가족의 장녀였던 A씨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경북지역 홍수 때 숨진 가족을 위한 구명시식을 부탁했다. 이른 나이에 타지에 나가 장사로 성공한 A씨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대단했다.
그녀의 부친은 매일 술을 마시며 가족에게 행패를 부렸다. 집안 살림은 어머니 차지였다. 어머니는 열심히 남의 집 농사도 도와주며 푼돈으로 생계를 책임졌다. 타지에 사는 A씨에겐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었다. 모두 똑똑하고 영특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장사를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홍수가 터진 거죠. 아버지는 자기만 살겠다고 나무 맨 꼭대기로 올라갔어요. 그 밑에 어머니, 그 밑에 여동생과 남동생이 매달려있었죠. 하지만 불어난 물살에 아버지만 빼고 나머지 가족은 모두 물에 떠내려갔어요.”
하루아침에 어머니와 동생 둘을 잃은 A씨는 혼자 살아남은 아버지를 대단히 미워했다. 평생 착하게 살아온 어머니와 쓸 만한 동생들은 죽고 술만 마시고 주정이나 부렸던 아버지만 살았으니 상종도 하고 싶지 않았다.
A씨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모진 말을 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떠밀어 일부러 죽인 건 아니냐, 가족이 죽을 때 따라 죽었어야 하는 거다, 어떻게 혼자만 살겠다고 맨 꼭대기로 기어 올라갈 수 있느냐면서 아버지에게 온갖 독한 말은 다했다.
하지만 몇 년 전 아버지가 노환으로 눈을 감자 A씨는 뒤늦게 후회했다. “제가 심했던 것 같습니다. 혼자 살아남은 아버지를 너무 미워했어요.” 그녀는 홍수로 죽은 가족과 아버지 모두를 위한 구명시식을 올렸다.
구명시식을 올리자 뜻밖의 진실이 밝혀졌다. 홍수 당시의 상황은 A씨가 알고 있는 것과 180도 달랐다. 아버지는 찬찬히 그날의 일을 회상했다. “갑작스런 홍수에 온 가족이 나무에 매달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물이 불어나자 제일 아래 있던 막내아들이 힘이 빠져 그만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순간 맨 꼭대기에 있던 아버지는 자신이 뛰어들면 자칫 다른 가족들까지 물에 휩쓸려 갈까봐 아들이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밑에 매달려있던 아내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고 곧바로 막내딸까지 뛰어들었다. 만약 아들이 물에 떠내려가지만 않았어도 아내와 딸은 죽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버지 영가는 장녀에겐 이 사실을 말하지 않길 바랬다. “저 애가 나한테 혼자만 살아남았다고 욕할 때마다 속이 참 시원했습니다. 세 식구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지 않았던 제 자신을 평생 미워했습니다. 그날 마누라와 자식들을 따라 죽었어야 했는데 살아남은 게 죄입니다.” 장녀 A씨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었다. 매년 장마가 오면 생각나는 A씨 가족. 올 장마는 큰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