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처럼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가진 내 친구 A가 얼마 전 동창 모임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모두 놀라고 말았다. 성형도 싫어하고 화장도 진하게 하지 않는 그녀가 타투를 했기 때문이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싫어하고 오로지 청초함을 무기로 삼는 여자의 심중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기에 윤기나는 작은 어깨에 그림을 새기고 등장한 것인지 모두들 궁금해 했다.
대충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감행했다가 시댁과의 불화로 남편과 헤어진 지 2년 정도 되었고 혼자가 된 이후부터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자면 타투를 한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타투 패티시가 있고 나 자신도 몸에 타투가 있어서인지 나는 A의 타투를 보자 급작스레 동료애가 생겨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워낙 보수적인 친구였던 터라 그녀의 ‘전향’이 더욱 반가웠다.
친구들이 보고 깜짝 놀란 A의 어깨에 있는 제비는 그녀의 두 번째 타투였다. 첫 번째 타투는 허벅지 안쪽에 있었다. 섹스하는 상대가 아니면 볼 수 없을 정도로 안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친구들 중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어깨 위에 올라앉은 제비 그림을 예쁘다고 칭찬하자 A의 얼굴에 여러 의미를 지닌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칭찬이 기쁘다기 보다 기억 속의 뭔가를 끄집어내고 다시 즐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자신의 몸에 새를 그려 넣은 타투이스트와 사귀고 있다고 실토했다. A에게 타투를 받는 사람과 해주는 사람 사이에 흐르는 성적 긴장감이나 도안을 고르며 나눴던 예술에 대한 대화들, 그와 함께한 타투 과정 자체가 매우 신선했다. 게다가 그와 함께 나눈 대화들은 그녀가 원래 타투이스트들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깨트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혼 후 여러 새로운 선택들로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고 시도했었는데 스스로의 편견을 깨고 색다른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것은 A에게 의미가 컸다. 이제야 사회적인 시선과 통념에서 벗어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지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위험하고 섹시한 남자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애인과 하는 모든 일이 짜릿하게 느껴졌다. 보수적인 시댁 며느리로 평범한 회사원의 뒷바라지나 하며 멍하게 살아오다 이제 타투가 가득한 남자의 뜨거운 몸에 안겨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쏟아내고 있었다.
A와 나는 서로 뭔가 안다는 듯한 눈빛을 나누며 타투한 남자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떠들고 각자가 선호하는 장르와 신체 부위를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알몸 위에 그려진 그림들이 내 위에서 급한 듯 움직일 때 몸에 윤곽을 강조하는 선들이 얼마나 자극적으로 보이는지 말하는 A의 어깨가 귀엽게 들썩일 때마다 제비가 날아가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