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귄 남자와 헤어진 지 약 4개월 만에 나에게도 드디어 애인이라 부를만한 사람이 생겼다. 클럽에서 만나 섹스만 하는 사이로 지내는가 싶었는데 서로가 갖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고 난 뒤 진지하게 사귀는 사이로 변했다.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에 우리는 1박2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비싸고 로맨틱한 장소에서 많은 돈을 쓰기보다 뭔가 촌스럽고 싸구려 같더라도 추억에 남을 만한 일탈을 하고 싶었다. 일탈이라고 해도 거창할 것은 없었다. 외국 생활을 오래해서 한국을 잘 모르는 애인을 서울 근교의 싸구려 모텔로 데려가고 배달음식도 시켜 먹으면서 함께 깔깔되고 싶었을 뿐이다.
서울을 벗어나 제일 촌스러운 모텔을 찾아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눈에 띄는 간판을 발견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모텔 이름이 새겨진 못생긴 간판에 '진동 침대'라고 써져 있었다. 종종 러브 체어가 있다는 모텔은 봤어도 진동 침대가 있다는 모텔은 처음이라 퍽 흥미롭게 보였다.
싸구려 세제 냄새가 진동하는 모텔 복도를 걸으며 나는 애인의 손을 꼭 잡았다. 화려하게 꾸미려 했으나 처절하게 실패한 방으로 들어가서 약간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는 애인의 표정을 보니 나는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 연애하는 사람이라면 꼭 이런 곳에 와봐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침대에 눕는 순간 나는 돈 넣는 기계 하나를 발견했다.
나체의 여인이 야한 포즈로 서 있는 그림이 그려진 베이지색 기계에는 5000원에 30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30분 동안 도대체 이 침대가 어떤 퍼포먼스를 펼칠지 알 수 없어서 선뜻 돈을 넣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애초에 모텔에 들어왔던 목적대로 진동 침대를 경험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미리 사서 챙겨온 데킬라를 꺼내 애인과 천천히 나눠 마셨고 서서히 취해갔다. 그리고 사랑을 나누다가 전동 침대가 생각나서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기계에 5000원을 넣었다. 갑자기 침대가 덜덜 거린다 싶더니 제법 힘차게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적응이 안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주보고 있었지만 점차 침대의 리듬이 파악되었다. 어색하고 신기해서 성욕은 가라앉았지만 기왕 넣은 5000원을 날릴 수 없어서 우리는 관계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럴 수가. 침대의 움직임에 따라 체위만 바꾸면 두 사람 다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삽입과 동시에 누워만 있으면 나머지는 전부 침대가 알아서 움직여 주는 것이었다. 거동이 힘든 80대 노인도 발기만 되어 있다면 누구와도 섹스할 수 있는 그런 침대였다. 아무도 움직일 필요 없으니 참 편리하다고 해야겠지만 진동 침대의 단점은 너무 웃긴다는 것이다.
그 소리와 상황이 너무 웃겨서 관계를 하면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고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말도 안되는 섹스를 하면서 애인의 눈을 마주친 순간 나는 우리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