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88577' 암호와 같은 숫자 조합은 프로야구 롯데의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리그 순위다. 최하위 언저리에 머물렀던 순위는 야구의 고장 부산 팬들의 자존심을 다치게 했다.
‘12 11 15 15 12’ 같은 방식으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대구FC의 순위를 나열한 결과다. 이 중 두 번은 꼴찌였다. 대구는 상위팀들의 승점자판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올 시즌 K-리그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팀이 대구다. 30라운드까지 K-리그 전반기를 마친 대구의 성적은 8위까지 진출하는 스플릿 시스템에서 상위리그엔 한 뼘이 모자란 10위(39점). 8위 경남(40점)과 승점 1점차였다. 더구나 대구는 전반기 내내 6~8위 권에 머물며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관중도 늘었다. 올시즌 실관중 집계가 시작되며 전통의 명문을 자처하는 구단들도 관중 하향 곡선을 그렸지만, 대구는 지난해 홈 평균 관중 6477명에서 올해 8739명으로 35% 가량 증가했다.
변화의 중심엔 김재하 대표이사가 있다. 김 대표는 스포츠인들에겐 ‘야구통’으로 알려져 있다. 김 대표는 1999년 겨울부터 2010년까지 11년을 삼성 라이온즈 단장을 지냈다. 야구 단장을 맡을 때 그는 김응룡·선동렬 감독 등 KIA타이거즈 출신을 사령탑으로 선임하는 등 파격적으로 구단을 운영했다. 지역 연고보다 실력 우선시하며 삼성의 팀컬러를 바꿨다.
김 대표는 작년 초 축구인으로 변신한 뒤에도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1년간 견습 기간을 마친 그는 올시즌을 앞두고 코칭스태프를 전면 개편했다. 모아시르 페레이라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를 브라질인으로 채웠다. 외국인 선수도 모두 브라질 출신으로 택했다. ‘삼바 축구’를 이식해 대구의 팀 컬러를 확실히 했다. 이 모든 과정을 김 대표가 진두지휘했다. 김 대표는 브라질 올림픽 대표팀 수석코치 출신의 모아시르 감독과 직접 만나 비전을 제시했고, 한국행을 담판지었다. 대구가 올 시즌 벌인 지역 봉사 활동 역시 김 대표의 제안이었다. 시즌 일정이 빠듯했지만, 대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찾아 1시간 동안 체육 수업을 함께하고, 배식 봉사를 했다. 후보선수가 아닌 엊그제 경기장에 뛴 선수들이 직접 학교를 찾았다. 학생들의 반응은 선풍적이었다. 학부모와 지역 사회의 관심도 높았다. 이들은 대구의 잠재적 팬이자 관중이다.
야구에서 잔뼈가 굵은 행정가가 축구에 발을 내디딘지 2년 만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그가 하는 방식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존 구단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측면은 없는지 반성해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