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김현수(24)는 야구 선수 중에서도 책을 자주 읽는 편이다. 주로 야구 서적을 네 권 정도 책장에 꽂아놓고 틈날 때마다 돌려본다. 지난 26일 사직구장에서 만난 그는 감명깊게 봤던 책 한 권을 추천했다. 바로 '야구천재 이치로의 99% 노력'이었다. "두 번 정도 읽었다. 이치로의 이야기를 읽으며 감명받았다"는 그는 책에 나온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스즈키 이치로(39·뉴욕 양키스)는 메이저리그(MLB) 올스타에 10차례나 뽑혔다. 지난 2003년 올스타전에서 1번 타자로 나선 그는 초구부터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고 한다. 결과는 땅볼 아웃. 김현수는 당시 이치로가 한 말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치로가 '올스타전 선발투수는 MLB 최고 투수다. 초구 스트라이크 역시 최고의 볼일 것이다. 그 초구를 내가 친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투수가 던진 첫 번째 공을 때리는 건 타자의 자신감 아닌가. 투수는 최상의 공을 던지고 타자 역시 자부심을 갖고 두려워하지 않고 친다."
책을 읽고 흘려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삶에 응용하는 이도 있다. 김현수 역시 타인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타격을 되짚을 줄 안다. 김현수는 이번 시즌 초반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지난 4월에는 왼 종아리 근육을, 5월에는 오른 약지를 다쳐서 벤치를 지켰다. 보통 몸이 아프거나 슬럼프인 선수들은 공을 끝까지 보고 신중하게 타격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은 슬럼프가 오면 천천히 치라고들 하는데 나는 더 공격적으로 친다. 고르지 않고 쳐야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리지 않고 안타도 나오는 것이다. 어떤 투수가 안타를 때리지 않는 타자에게 제대로 된 공을 던지겠나"고 잘라 말했다. 이치로가 그랬듯, 눈앞의 승부를 피하지 않고 자신감있게 배트를 휘두른다는 의미였다.
이치로 말고도 그를 일깨워준 이가 또 있다. 팀 고참인 손시헌(32·두산)이다. 김현수는 지난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서 타격폼을 고쳤다. 타격 때 들어올리는 오른 다리의 높이를 낮췄고 스윙 궤적도 줄였다. 비단 이번 시즌만의 일이 아니다. 2010·2011년 겨울에도 그는 폼을 조금씩 손봤다. 김현수는 "(손)시헌이 형이 '네가 가진 것이 가장 좋은데 왜 자꾸 다른 걸 찾느냐. 폼을 고치다가 네가 가진 장점을 놓친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 내가 가진 장점을 살리지 않고 실험만 했다. 형의 그 한 마디가 중심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나에게는 전환점이 된 조언이었다"고 전했다.
김현수는 이번 시즌 타율 0.307, 110안타 58타점을 기록 중이다. 전체 득점권 타율 1위(0.443)답게 주자가 나가면 또박또박 안타를 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7개에 그치고 있는 홈런 개수다. 그는 "작년에 3할을 왔다갔다 할 때도 타격 지표를 보지 않았다. 홈런 숫자가 줄어들었지만 중요한 건 타점과 장타다. 올해 부진한 것은 맞지만 성적에 신경 쓰지 않고 내 타격을 하겠다"고 했다. 자신감을 갖고 두려움 없이 치겠다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