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병헌(42)이 데뷔후 첫 사극에서 1인2역을 소화하며 '명불허전'이란 말을 듣고 있다. '악마를 보았다' 이후 한국영화로서는 2년여만에 선보인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감독, 20일 개봉)를 통해서다. 이 작품에서 이병헌은 조선의 왕 광해와 광해를 꼭 닮은 천민 하선을 동시에 연기했다. 광해를 보여줄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예의 변함없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스크린을 압도했고 천민 하선이 됐을때는 천연덕스럽게 인간미를 드러내며 즐거움을 줬다. 최근 이민정과의 열애사실을 공개하며 축하를 받은데 이어 영화에 대한 호평까지 나와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상태. 브루스 윌리스와 동반출연하는 할리우드 영화 '레드2' 촬영차 오는 10일 출국을 앞둔 상황 속에서 정신없이 홍보일정을 소화중인 이병헌과 소탈한 대화를 나눴다.
-1인 2역을 소화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왕처럼 변해가는 천민과 왕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줘야했다. 여건상 이야기 진행 순서대로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매번 촬영할 때마다 내 연기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감독과 대화를 하고 바짝 신경을 기울여야만 했다. 덕분에 촬영장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평소 촬영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동반출연한 김인권이 시사회 이후 '이병헌의 연기는 최고'라는 말을 했다.
"시사회 당시에도 인권이가 '어떻게 저런 연기를 했냐'라고 하더라. 함께 했던 동료연기자의 칭찬이라 기분이 좋았다. '광해' 촬영을 시작할 무렵에도 인권이가 '이번에 내 캐릭터는 '달콤한 인생'에 나온 이병헌의 느낌을 살리려고 한다'며 내 목소리와 표정을 따라해보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어 실컷 웃은 적이 있다."
-왕을 연기해본 소감은.
"왕 역할을 하면 연기실력도 는다는 말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근엄한 표정과 말투를 쓰다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또 다른 늬앙스의 연기를 시도해볼 수도 있다. 다양한 연기를 시도해볼 수 있으니 실력이 늘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외에도 곤룡포를 입고 용상에 올라갔을때의 통쾌함이 있다. 단, 왕의 등장을 찍기 위해 수십명의 보조출연자들이 30~40분씩 똑같은 동작을 맞춰보고 연습하는 걸 볼 때는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극중 하선은 누구나 꿈꾸는 왕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선정국과 맞물려 시너지효과가 날 것 같다.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흥행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기분좋은 일이다."
-'악마를 보았다'로 백상예술대상 대상을 받았다. 이번에도 노려볼만하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더 없이 좋은 일 아닌가. 백상예술대상이 열리는 내년 3~4월 쯤에는 아마 한국에 돌아와있을 것 같다. 만약 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광해'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빅히트를 친 작품도 좋지만 내게는 '번지점프를 하다' '달콤한 인생' 등 '대박'은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작품이 특히 소중하다. 얼마전에도 '번지점프를 하다' 상영회가 있어 찾아가본 적이 있다."
-이전 출연작을 다시 볼때면 어떤 느낌이 드나.
"민망하고 낯 뜨겁다.(웃음) 자기 연기를 보면서 만족하는 배우가 많지는 않을거다. '광해' 역시 아쉬운 부분은 많다. 하지만, 이 영화가 분명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흥행면에서도 기대를 하고 있다."
-KBS 1TV '뉴스라인'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박상범 앵커의 미흡한 준비 탓에 곤욕을 치렀다.
"나를 편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그러는줄 알았다.(웃음) 좀 당황스럽긴 했는데 그렇다고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오히려 나는 보도국에서 만드는 생방송 뉴스 프로그램에 나간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 긴장이 돼 정신이 없었다. 정색하고 정확한 말만 해야할 것 같은 부담도 컸다. 시작하기 전에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는지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뉴스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 때는 통역자가 있어 의지가 됐다. 이번에는 혼자 하는 거라 정말 떨렸다."
-이민정 이야기도 좀 해야겠다.
"이미 공개한 부분이니 문제될 것도 없다. 다만 열애와 관련된 내용에만 너무 관심이 집중돼 '광해'가 묻히는게 부담스럽다. 동료배우들과 100여명이 넘는 스태프들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다. 기사가 나갈 때 제목만이라도 '광해'를 강조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열애사실이 알려졌을때 애써 감췄다.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것 같다.
"이미 밝힌 것처럼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 무턱대고 공개연애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생각해야할 것들, 정리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 사실을 물어오는 취재진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한국에 있는 동안 스케줄이 너무 빠듯해 이민정과 데이트할 시간도 없겠다.
"만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이민정이 직접 도시락을 들고 촬영장까지 오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홍보기간이라 그것마저도 부자연스럽다. 홍보차 매체 기자들을 만나러 다니는데 그 자리에 이민정이 도시락을 들고 나타날 순 없지 않나.(웃음)"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혼생활을 머릿속으로 그려본 적은 있지 않나.
"결혼문제에 있어서는 다들 너무 앞서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입장에서는 갖가지 억측들을 하나씩 헤쳐나가는게 관건인 것 같다. 무엇보다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결혼설 등 루머가 확산될 때 어떤 생각을 했나.
"마치 내가 아닌 또 다른 이병헌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대중들로부터 너무 멀리 온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그렇다고 무작정 여기저기에 나가 스스로를 미화시키는 건 아닌 것 같다. 인간 이병헌으로서 미화되기보다는 역량을 과시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