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감독은 12일 잠실 SK전 0-3으로 뒤진 9회말 2사 2루에서 신인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냈다. 신동훈은 방망이를 들고만 있다 삼진을 당했고 LG는 졌다. 신동훈이 정우람과 상대했을 때 대기 타석엔 아무도 없었다. 경기 포기였다.
김 감독은 이튿날인 13일 "(9회말 세 명을 올린 SK의 투수 교체가) 우리 팀을 기만하는 행위라 생각했다. 지더라도 상대에 일침을 가하고 싶었다"고 '투수 대타'의 이유를 설명했다.
감독이 자신의 불만을 경기 중 선수 기용으로 드러내는 경우는 종종 있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SK 지휘봉을 잡았던 2010년 LG와의 경기 3-10으로 뒤진 8회 2사 만루에서 투수 김광현을 대타로 냈다. 2009년 KIA전 5-5였던 연장 12회말에도 3루수인 최정을 투수로, 투수 윤길현을 1루수로 쓰는 상식 밖의 교체를 했다. SK는 두 경기에서 모두 졌다. 김성근 감독도 팬을 무시했다며 비난받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팬들의 분노가 크진 않았다. 최정의 경우 SK가 내보낼 투수가 없어 나왔다고 볼 수도 있었다. 또 김 감독이 교체에 항의의 뜻을 담았을지언정 선수들은 끝까지 이기려 애썼다. 당시 시속 140㎞대 중반의 공을 뿌린 최정은 끝내기 폭투를 내주고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김기태 감독은 SK가 9회에만 투수를 두 차례 바꾸자 화가 났을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얕보였으면 상대가 저렇게 나오느냐. 지더라도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끝나고 선수들에게 오기를 가져야한다고 했다"는 말에서 그런 심기가 읽힌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다. 경기 중 관중 앞에서 승부를 포기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정말 일침을 가하고 싶었다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면 어떻게든 이겨 패배로 돌려주거나 1점이라도 뽑으려 노력했어야 했다. 그게 팬들에 대한 예의다. 조계현 LG 수석코치가 김 감독을 말린 것도 그래서였다.
야구장은 개인적인 감정의 분출구가 돼선 안 된다. 심판이 경기 종료를 선언할 때까진 오직 근성과 투지를 쏟아내는 무대가 돼야 한다. 텅빈 공터에서 하는 동네야구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렇다.
LG 팬들은 팀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이기나 지나 야구장을 찾아 'LG 없이는 못 살아, 정말 정말 못 살아'를 기립해 부르며 열성적으로 선수들을 응원한다. LG가 잘해서가 아니라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날 영문도 모른 채 "신동훈 안타"를 외친 팬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번 '투수 대타'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이만수 SK 감독도, SK 선수도, 대타로 나선 신동훈도 아니다. 1점이라도 내길 바라며 끝까지 경기를 본 LG 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