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7이닝을 던지며 승리에 발판을 놓는 투수와 1, 2점 차 리드를 지켜주는 투수, 선발이 아쉽고 이제야 뒷문이 탄탄해진 LG로선 둘 다 놓치기 싫은 선택이다. 둘 다 봉중근(32·LG)인 게 문제다.
지난해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봉중근은 올 시즌 마무리 투수로 뛰고 있다. 시즌 초반 마무리를 맡았던 리즈가 제구 난조에 빠져 선발로 돌아가면서 5월부터 마무리가 됐다. 봉중근은 기대 이상으로 호투했다. 수술 후유증에도 평균자책점 1.30으로 23세이브를 거둬 고민거리였던 뒷문을 단단하게 지켰다. 그는 "내년에도 마무리로 뛰고 싶다. 체질 같다"며 애착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LG 선발진이다. 올 시즌 LG 선발 투수는 34승47패 평균자책점 4.34로 부진했다. 8개 구단 중 승리가 가장 적고, 평균자책점은 두 번째로 높다. 주키치가 11승을 거뒀고 리즈는 선발로 돌아온 뒤 호투하고 있지만 둘을 받쳐줄 만한 투수가 보이지 않는다. 3선발 김광삼은 7승9패 평균자책점 4.92를 기록 중이다. 17번 선발 등판한 이승우는 2승9패 평균자책점 5.90으로 기대에 못 미쳤다. LG가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원인 중 하나가 토종 선발의 부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LG는 봉중근이 눈에 밟힐 수밖에 없다. 팔꿈치를 다치기 전 3년 동안 봉중근은 매 시즌 180이닝 가까이 책임지며 10승 이상을 거뒀다. 봉중근이 선발로 오면 원투쓰리 펀치를 가동할 수 있다. 133경기를 치르는 정규시즌에서 토종 1승 카드의 비중은 크다. 넥센이 후반기 곤두박질친 것, 두산이 타선 부진의 악재 속에서 4강을 사실상 결정지은 것 모두 토종 선발의 성적으로 설명이 된다.
봉중근은 올 시즌 34⅔이닝을 던졌다. 에이스 출신을 세이브 상황에만 내보내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 수 있다. 팀 전력에 약해 세이브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고 그의 빈자리를 메워줄 선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물론 뒤가 약한 LG로서는 봉중근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봉중근은 수술을 받은 뒤 긴 이닝을 소화한 적이 없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후반기 들어 선발로 뛰면서 점차 투구 수를 늘려갔을 테지만 마무리를 맡으면서 없던 일이 됐다. 봉중근은 "30살이 넘어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 선발로 뛰기 쉽지 않다고 들었다"며 공 개수에 부담을 털어놨다.
LG는 내년 시즌 정찬헌과 최동환이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다. 메이저리그 출신 류제국도 계약을 앞두고 있다. LG는 이들과 기존 투수들의 경쟁으로 마운드의 힘을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얼마나 좋아질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김기태 감독은 봉중근의 내년 보직에 대해 "그대로 가야하지 않겠느냐"면서도 "시즌 끝나고 생각할 문제"라고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