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 서울 이모네 가서 살래? 여기는 장사 하느라 너무 시끄럽고 네가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우리 아들 가서 잘 할 수 있지?” 뭐, 한 두 번 간 적이 있던 서울에 간다니 놀러 가는 것 같아 일단은 좋았다.
당시 서울에 가서 공부 한다는 것은 대단한 해외 유학 정도의 분위기였다. 지금 해외 유학을 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맨 먼저 걱정하고 질문하는 것이 ‘영어는 잘해?’다. 마찬가지로 내가 서울에 간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자 친구들과 어린 삼촌들이 와서 맨 먼저 하는 말이 “너 워특헐래~설 가서 이랬슈 저랬슈~ 충청도 사투리 쓰면 애덜이 무저게 놀릴껴~”였다. 아 맞다…. 그래, 서울 가서 지금의 말 쓰면 같은 반 친구들이 많이 놀릴 것이 확실하다. 방학에 내가 서울 이모네 놀러 갔을 때 이웃들이 내 말투 듣고 놀린 적도 있었고, 서울 영등포에 살던 겁나 이쁜 친척 은하·은숙이 누나들이 방학 때 우리 집에 놀러오면 “그랬니? 저랬니?” 하는 ‘니’를 겁나 예쁘게 쓰지 않았던가.
서울에 가시 싫어졌다. 근데 가야만 했다. 그래서 영리한 희석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동네에는 그 누구도 서울말을 쓰는 사람이 없다. 근데 배워야 한다. 그것도 당시 초등학교 수준의 서울말을 배워야 한다. 저녁에 애들과 놀다말고 집에 뛰어 들어와서 텔레비전을 튼다. MBC에서 하는 ‘호랑이 선생님’을 보는 거다. 정말 최고의 '외국어(?)' 같은 서울말 공부 교육 방송이 아닌가. 이재학이 나오는데 인기가 많았다. ‘오호라~ 저것이 진정한 서울말이로세.’ 서울에 가면 '주희처럼 예쁜 여자애 들이 있겠지?' 하는 기대감이 조숙한 나를 자극하기도 했다. 파란 야구유니폼을 입은 황치훈을 보면서 '아 서울 애들은 프로야구 옷도 진짜 갖고 있구나' 하는 동경심이 생겼다. 김진만은 착하고 순한 범생이 역할인데 말투가 너무 착하게 음절이 끊어지는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렇게 착하지도 않았고 저 말투로 서울에 갔다가는 애들에게 약하게 보여 두들겨 맞기 딱이다 싶었다.
근데 저 호랑이 선생님은 왜 저렇게 무섭게 생겼을까? 저 선생님은 지방질의 뚱땡이 느낌이 아니라 운동선수 같은 단단한 뚱뚱함의 덩치에 목소리도 우렁차고 진짜 잘못한 일에만 혼을 내시는 무서운 선생님이시다. 심지어 그냥 드라마일 뿐인데 아직도 ‘이시다’ 같은 존경심과 두려움이 있는 말을 쓰게 된다. 제발 내가 서울에 가서 저런 무서운 선생님 반에 들어가면 안 되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난 '호랑이 선생님'을 보면서 몇 달 동안 서울말을 독학했고 철저한 예습·복습으로 준비했다. 4학년 겨울. 서울 암사동의 신암초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첫 인사로 “나는 충청남도 보령군 웅천면에서 온 남희석이라고 혀~” 라고 하며 서울말 공부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 후. 나는 안양예고에 가서 대스타 이재학을 만나게 된다. 고1 때 안양중앙시장 고딩을 위한 순대볶음 집 2층 다락에서 술에 취해 "난 어려서부터 널 보고 자랐다. 너보다 잘 되는게 꿈이다"라고 말하는 쪽 팔린 고백을 하기도 했다. 김진만 형은 몇 해 전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착한 그 말투와 심성 그대로였다. 호랑이 선생님은 1998년도 강남의 고깃집에서 우연하게 뵙게 되었다. 최수종 형과 소주를 드시고 계셨다. 나를 불러 자리에 가서 인사를 드리는데 정말 떨렸다. 그 앞에서는 '나도 지금 젤 잘나가는 연예인인데' 따위의 마음은 감히 자취를 감췄다. 주위에 빈 소주병이 20병은 되어 보였다. 근데 두 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잠깐 앉은 사이 곱하기 2단에서 중간 즈음 나올 수의 소주를 마셨다. 얼마나 기쁘고 떨렸는지 정말 주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 호랑이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어쩌면 내게 가장 많은 교훈을 주셨던 내 어린 시절의 선생님이 떠나셨다. 남을 괴롭히지 말고 정의로워야 하며 솔직하고 당당하라는 말씀을 그 당시 우리에게 해주신 담임선생님이 떠나셨다. 아내를 일찍 잃으시고, 딸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한 아버지이자 우리의 커다란 선생님을 잃은 기분이다. 호랑이 선생님, 편히 좋은 곳에 가셔서 사모님과 땅에서 못 다한 사랑 나누셔요. 웨딩드레스에 면사포 씌워 예식 못한 것을 그토록 미안해하셨으니 멋진 꽃밭에서 결혼식도 하시구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