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준상과 최수종 등 인기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영화에 출연하는 사례가 많아 눈길을 끈다. 이들의 출연작은 주로 저예산영화. 상업적인 부분보다는 작품성과 영화 자체가 가진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해 이 같은 결정을 하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소규모 제작사들의 경우 일단 배우들에게 영화의 취지를 알리며 도움을 청한 후 손익분기점을 넘길 때 감사의 표시를 하기도 한다. 개런티를 받지 못하더라도 작지만 알찬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배우들이 지원사격을 해준다는 점, 이로 인해 다양한 영화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지극히 긍정적인 일이다.
▶’철가방 우수씨’ 최수종 재능기부, ‘터치’ 유준상 김지영도 노개런티
최수종은 22일 개봉하는 ‘철가방 우수씨’(윤학렬 감독)에 개런티를 받지 않고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했다. 70여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아이들을 돌보며 ‘나눔’을 실천하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실존인물 고 김우수씨의 삶을 세상에 알린다는 영화의 취지 때문에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수종의 아내 하희라와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동문인 제작사 대표가 직접 최수종에게 출연제의를 했다. 평소 드라마 스케줄이 바빠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최수종도 이번엔 흔쾌히 “OK”를 외쳤다.
마침 스케줄상 영화를 찍을 여유가 생긴 것도 사실이지만 ‘철가방 우수씨’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했던 게 출연을 결심한 주된 이유다. 손익분기점을 넘어 수익이 생길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금액 전체를 ‘좋은 일’에 쓰게 해달라고 제작사와 협의를 마친 상태다.
8일 개봉한 영화 ‘터치’(민병훈 감독)의 남녀주인공 유준상과 김지영도 개런티를 받지 않았다. 직접 부른 OST 수익까지 불우이웃 돕기에 쓰기로 결정한 상태. 유준상은 이 영화의 연출자 민병훈 감독과의 인연으로, 김지영 역시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영화에 출연했다.
유준상은 ‘터치’ 제작보고회 등 공식석상에서 “거대 배급사들이 만들어내는 상업영화 뿐 아니라 작지만 알찬 영화들이 만들어져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 김지영 역시 “다양한 영화들이 나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현도 22일 개봉하는 ‘범죄소년’(강이관)에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16년만의 스크린 복귀인데다 데뷔후 처음으로 미혼모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이정현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였다. 반드시 세상에 나와야하는 작품이라 생각했다”고 출연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남영동 1985’ 출연배우 전원 노개런티, 조성하도 ‘비정한 도시’ 출연료 없이 참여
22일 개봉하는 ‘남영동 1985’(정지영 감독)에는 박원상과 이경영·이천희·명계남 등 연기파 배우 전원이 노개런티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고 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제작의도에 뜻을 같이 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선언한 정지영 감독의 정치성향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각각 맡은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출연자 중 가장 젊은 배우 이천희는 극중 고문에 참여한 김계장 역을 맡아 인상적인 악역 연기를 보여준다. 드라마와 상업영화에서 주로 선한 캐릭터를 맡아왔던 이천희로서는 파격적인 변신이다.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을 생각하기보다 연기폭을 넓히기 위해 과감한 도전을 한 셈이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면서 ‘가장 바쁜 배우’로 자리잡은 조성하도 지난달 극장에 선을 보였던 ‘비정한 도시’(김문흠 감독)에 노개런티로 참여했다. 드라마 ‘로맨스타운’의 종방연까지 찾아와 부탁하는 감독의 열정에 꽉 짜인 스케줄을 애써 비워가면서 출연했다는 후문.
무명 시절부터 송일곤 감독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연출자들과 작업하면서 ‘작지만 힘있는 영화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작품을 쫓아다니기보다 고르는 입장이 된 스타들이 굳이 노개런티로 영화에 출연할 이유가 없다. 개런티를 받지 않고 영화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날 경우 다른 제작사에서도 이런 요구를 해와 오히려 곤란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다양성을 생각하고 연기 자체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다는 건 분명 용기있는 선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