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39)가 '은퇴'라는 종착역과 마주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었던 그의 메이저리그 기록도 모두 '전설'이 됐다. 박찬호는 1994년 4월8일 애틀랜타전(1이닝 2실점)을 시작으로 2010년 10월2일 플로리다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17년 동안 활약하며 총 8714명의 타자를 상대했다. 그리고 그 사이 깨지기 어려운 아시아 출신 투수 기록을 곳곳에 세우며 역사를 새롭게 썼다.
◇17년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약한 아시아 선수다. 박찬호를 제외하면 10년 이상 빅리그에서 뛴 동양인 투수는 고작 두 명(노모 12년·오카 10년)뿐이다. 순수 아마추어로 진출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쉽지 않기 때문에 박찬호의 오랜 선수 생활은 더욱 의미가 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일본인 투수들은 대부분 포스팅 시스템이나 FA(프리 에이전트) 자격을 취득한 후 미국에 진출한 경우다. 국내 선수들은 그동안 일본에 비해 고졸 선수들의 미국행이 많았지만 2008년 백차승과 류제국 이후 메이저리그 등판 기록이 끊겼다. 현재 LA 다저스 입단을 추진 중인 류현진(25·한화)이 17년을 뛰기 위해서는 마흔 두 살까지 공을 던져야 한다.
◇476경기
데뷔 초 선발투수였던 박찬호는 미국 생활의 마지막에는 불펜투수로 잦은 등판을 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투수로는 처음으로 선발로 200경기(287경기)와 불펜으로 100경기(189경기) 이상 각각 등판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일본의 하세가와가 517경기에 출장하며 최다 등판 기록을 갖고 있지만 그는 선발로 단 8경기밖에 나서지 않은 불펜 전문 투수였다. 통산 123승을 모두 선발로 쌓은 노모의 기록과 비교했을 때 가치가 떨어진다는 평도 있지만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는 꾸준함과 역할을 고집하지 않고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124승
왕첸밍(워싱턴·61승)·마쓰자카(보스턴·50승) 등 대만과 일본의 천재 투수라고 불렸던 선수들이 모두 이 기록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모두 부상에 고꾸라졌다. 박찬호가 미국에서 쌓은 통산 124승은 리그 역대 382위 기록이지만 앞으로 깨지기 힘든 아시아 투수 최고 기록이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다르빗슈가 16승을 기록했지만 그가 박찬호의 기록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앞으로 11년 연속 10승을 해야 가능하다. 철저한 몸 관리가 동반되지 않으면 정복하기 쉬지 않은 기록이다. 현역 아시아 최다승 기록은 구로다(뉴욕 양키스·57승)가 갖고 있지만 그의 올해 나이는 서른 일곱이다.
◇1993이닝과 몸에 맞는 공 138개
아시아 투수로는 첫 2000이닝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역대 1000이닝을 넘긴 동양인 투수는 단 세 명(박찬호·노모·오카)에 불과하다. 박찬호는 2000년 226이닝을 던지며 리그 9위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개인 최고인 234이닝을 투구해 3위를 차지했다. 일본 최고의 강견으로 불리는 다르빗슈가 올 시즌 기록한 이닝은 191⅓이닝이다. 어깨 보호 때문에 한 시즌 200이닝 투구가 쉽지 않은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2000이닝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의 선수 생활'의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통산 1715개(아시아 2위·노모 1918개)의 삼진을 잡아낸 박찬호는 몸에 맞는 볼도 가장 많았다. 2001년과 2002년 이 부문 리그 1위를 차지한 그는 통산 138개의 몸에 맞는 볼을 내줘 김병현(841이닝 80개)를 누르고 동양인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