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39)는 19년 프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희망'들이 남았다. 올 시즌 신인왕으로 우뚝 선 서건창(23·넥센)도 그 희망 중 하나다.
서건창은 박찬호 장학회가 재단법인으로 정식발족된 2001년 '야구 꿈나무'로 장학금을 받았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서건창은 "장학금 선정 소식을 알고 기분이 최고였다. TV로만 보던 우상을 만날 생각에 들떴던 게 기억난다"며 웃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우상과의 만남. 서건창은 "장학금 전달식에서 선배를 실제로 보니 '어마어마'한 느낌을 받았다"며 "'박찬호 장학금'을 받고 어린 마음에도 정말 뿌듯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올 시즌 '우상'을 다시 만났다. '꿈나무'는 프로 선수가 됐고, 우상은 국내 리그에 데뷔해 11년 만의 재회가 이루어졌다. 서건창은 "우상으로 마음 속에 품던 박찬호 선배를 타석에서 마주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있었다"며 "시즌 초 박찬호 선배를 상대했던 선수들이 왜 타석에서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승부에서는 밀릴 수 없었다. 올 시즌 서건창은 박찬호를 상대로 3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그는 "안타를 때려냈다는 것보다는 타석에서 상대를 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큰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박찬호에게 자신의 '출신'을 밝히기도 했다. 서건창은 "시즌 중반쯤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선배에게 '저 사실은 '박찬호 장학금' 출신이에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선배가 '잘 돼서 보기 좋다'고 답해주셨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선수로서도 대단하시지만 야구 외적으로도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시는 선배다. 정말 존경한다"며 "은퇴 소식을 듣고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선배가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다"며 우상에 대한 마음을 드러냈다.
'꿈나무'가 '신인왕'이 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그는 2008년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방출된 뒤 지난해 테스트를 거쳐 넥센에 재입단했다. 지난해 이맘 때는 "눈에 띄려고 죽자살자 훈련을 하고 있었다"던 그는 1년 만에 신인왕을 거머쥐고 2루수 골든글러브 후보에도 올랐다. 서건창은 골든글러브 수상에 대해 "워낙 경쟁자들(SK 정근우·KIA 안치홍)이 잘하지 않았나. 나는 특출난 성적이 아니다"며 겸손해 하면서도 "선수라면 누구나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크게 기대하진 않지만 받기 싫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기회는 항상 오는 게 아닌 것도 안다"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더 큰 꿈을 그린다. 내년 시즌 목표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를 세우진 않았지만 분명한 건 올해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플레이에서 안정감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내년 3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에는 선발되지 못한 서건창은 "선수로서는 태극 마크를 다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자 꿈이다"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이제 소년은 다른 이들의 희망이 됐다. 서건창은 "예전의 나와 같은 처지에서 생활하는 선수들이 나를 보고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는다면 그보다 기분 좋은 일이 없을 것 같고, 고마울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한 보람이 있구나 싶을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