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차 배우 손예진(31)이 '도도한 여배우'란 선입견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손예진은 25일 개봉하는 100억 대작 영화 '타워'(김지훈 감독)에서 최악의 화재 현장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타워스카이' 푸드몰 매니저 서윤희 역을 청순함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캐릭터로 표현했다. 눈웃음으로 보는 이들의 입꼬리를 올리게 만드는가 하면 숯을 얼굴에 잔뜩 묻힌 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통솔하며 반전 매력을 뽐냈다. "재난 영화라서 많은 배우가 출연했다. 함께 고난의 시간을 겪고나니 동지애가 생기더라"며 "촬영이 끝나고나니 피를 나눈 형제 것 같이 느껴졌다. 군 생활을 함께 한 전우 같다"고 수줍게 웃는 손예진을 만났다.
-캐스팅 제의 받았을 당시 거절했다고.
"내가 안 해도 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나는 '손예진이 아니어도 되는 역할'이 싫다. 근데 시나리오가 볼수록 매력적이더라.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의 심리가 재밌었고 여러 명의 배우가 나오는 작품이 욕심났다."
-의상 한 벌로 촬영했다고.
"올 화이트 의상을 입고 찍었다. 한 번도 입지 않은 흰 바지와 협찬 받은 상의를 코디해 입었다. 물에 빠지고 화염에 휩싸이다보니 걸레처럼 더러워지더라. 세탁소에서 몇 번 맡겼는데 그 때마다 세탁소 아저씨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며 깜짝 놀라셨다. 하하. 비싼 바진데 정말 아깝다."
-'타워'의 재미는 뭔가.
"스케일도 눈길을 끌겠지만 소소한 에피소드가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다. 등록금을 위해 청소부를 하는 사람과 임신부, 황혼 로맨스 등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힘들었던 촬영은.
"타워가 물에 잠긴 상황을 찍었을 때다. 촬영 감독님은 내가 물속에서 오들오들 떠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하시더라. 넘어지고 물에 휩쓸려가는 장면 등을 찍고 나면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촬영 당시를 물으면 '힘들어 죽을 뻔 했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법도 한데 좋은 기억들만 떠오른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나보다.
"이렇게 많은 배우들이 나온 영화는 처음이었다. 여러 배우가 호흡을 맞추는데 한 명이라도 엇나가면 균형이 바로 깨지게 되더라. 그동안은 로맨스물을 주로 찍었기 때문에 혼자 감정 다스리는 것이 관건이었다. 느낀 것도 많고 그동안 작품을 할 때 '너무 예민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김성오와는 단둘이 밥을 먹는 사이라고.
"첫 촬영 전 배우들과 친목을 다지는 자리에서 처음봤는데 대뜸 '최근 작품 할 때 살쪘었죠?'라고 묻더라. 이후에도 내가 싫어하는 질문들만 계속했다. 자주 마주치면 이상한 질문을 해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아 피해다녔다. 근데 현장에서 보니 연기도 잘하고 순수하더라.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이 열렸고 친해지게 됐다. 촬영이 없는 날 김성오의 제안으로 둘이 추어탕도 먹었다. 이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독님과 스태프, 동료배우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감히 손예진과 밥을 먹다니'하며 분노하시더라. 이후 김성오는 미움을 한몸에 받았고 '내 분량은 아마 모두 편집될 것'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하하."
-보기와 달리 성격이 털털하다.
"20대는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성격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돌아서면 '왜 그런 이야기를 했지'하고 속앓이를 했다. 많이 예민했던 것 같다. 그런데 30대가 되고 나니 성격도 조금씩 변하더라. 삶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이전에는 촬영을 마친 뒤 바로 숙소에 들어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배우·스태프들과 맥주를 꼭 마셨다. 함께 작업하는 재미와 의미를 알게 됐다."
-연애는 하고 있나.
"쉬는 중이다. 하하. 필요성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20대에는 남자다운 스타일이 좋았는데 이젠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