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전북 현대의 2013시즌 첫 훈련이 열린 전주시 덕진체련공원. 한 고참 선수는 후배들과 러닝을 똑같이 마친 뒤 삼각콘을 들고 훈련 위치를 잡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과 코칭을 병행했다. 이날 전북 지역 방송국도 이 선수를 만나기 위해 훈련장을 찾았다. 올 시즌부터 플레잉 코치로 변신한 '식사마' 김상식(37) 이야기다. 전북은 지난 1일 최고참이지만 무게 잡지 않는 분위기 메이커 김상식을 플레잉 코치로 선임했다. 향후 은퇴 후 코치로 합류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내린 결정이다. 김상식은 경기에 정식 선수로 나서면서, 소속팀 지도를 병행하는 플레잉 코치로 2013년 그라운드를 누빈다.
-플레잉 코치 선임 축하한다.
"처음이라 낯설다. 밥을 코칭스태프 테이블에서 먹어야할지, 선수들 테이블에서 먹어야할지 고민이다(웃음). K-리그에서 서정원, 김대의 선배 등이 플레잉 코치를 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폴 스콜스도 플레잉 코치다. 플레잉 코치 역할에 대해 100%는 모르기에 포털사이트에 검색도 해봤다. (김)대의 형에게 카카오톡으로 좀 물어봐야겠다."
-어떤 플레잉 코치가 되고 싶은가.
"최강희 대표팀 감독님이 올해 6월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이 끝난 뒤 전북으로 복귀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한국 축구 위해 대표팀에만 집중하고 있는 최 감독님의 복귀는 일단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6개월이 됐든 1년이 됐든 플레잉 코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 파비오 감독대행을 잘 보좌하겠다. 2009년 지도자 자격증 3급은 땄다. 몸도 잘 만들어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한국 나이로 38살인데 띠동갑 후배들과도 동갑내기 친구처럼 지낸다. 개그맨 뺨 치는 유머감각 비결도 알려달라. "집에서는 무뚝뚝하다. 코미디언도 집에가면 안 웃기고, 요리사도 집에가면 요리를 안하지 않나(웃음). 사투리를 써서 그런가. 2006년 독일월드컵 대표로 프랑스전 앞두고 미니홈피에 '티에리 앙리, 뒤통수 조심해라. 한 대 때리고 싶어진다'란 글을 남겼는데, 당시 팬들과 유쾌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유머 감각이 늘은 것 같다. 어린 후배들과 청바지, 신발 등 정보 공유하고 장난도 많이 친다. 아내가 '조선소 다니는 친구들은 아저씨 같은데, 당신은 마인드가 젊어지니 외모도 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가 내게 하는 유일한 칭찬이다(웃음)."
-동기 김영철 성남 2군 코치, 김성재 서울 2군 코치보다 어려 보인다.
"나도 코치를 시작했으니 금방 늙을 것 같다. 최강희 감독님이 '너도 마흔살 넘으면 우리랑 똑같이 된다. 금방 쉰살된다'고 하시더라. 생각했던게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 날씨도 추운데 마음까지 춥다(웃음)"
-지난해 중앙 수비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27경기에 출전했다. 프로 15년차인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같다. "실은 많이 힘들었다. 선수들의 부상이 많아 표를 안냈을 뿐이다. 선수들이 3년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면서 피로가 지속적으로 누적된게 줄부상으로 이어진 것 같다. 힘들어하시는 이흥실 전 감독님에게 힘이 되고 싶어 더 뛰었다. K-리그 준우승이면 잘한건데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만큼 전북이 강팀 반열에 올랐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코뼈 수술도 받았는데.
"프로 데뷔 후 첫 수술이다. 무릎, 발목 등에 매스를 댄 적도 없다. 난 사실 터프한 선수도, 카드 캡처(경기에서 경고나 퇴장을 자주 당하는 선수)도 아니다. 억울하다. 오해와 진실로 꼭 써달라(웃음). 프로통산 레드카드를 딱 한 번 받았다. 지난해 받은 경고도 4장에 불과하다. 이력서가 깨끗하다. 더티한 플레이를 펼치는 김한윤(부산) 형과는 다른 타입이다(웃음)."
-올해가 끝난 뒤 현역에서 은퇴하나.
"아직 결정하지는 않았다. 난 늘 은퇴는 우승을 거둔 해에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한국에서 은퇴는 떠밀리듯 좋지 않게 하는 경우가 많다. 정상에서 물러나는 선배들을 보면 부러웠다. 올해 우승해서 멋지게 마무리 짓고 싶은 바람이 크다."
-전북이 최근 이승기, 이재명, 박희도, 송제헌 등 알짜배기 선수들을 영입했다. "주축 5명이 군입대했다. 상대팀으로 대적했을때 잘한다고 느낀 선수들을 영입한 것 같다. 특히 승기가 잘했다. 광주에서 그 정도면 전북에서 충분히 더 잘해낼 것 같다. 이 선수들이 팀 전력에 플러스가 될 수 있도록 팀워크를 잘 만들어가는게 중요하다."
-올해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지난해 1-5 참패를 안긴 광저우 헝다(중국)와 재대결한다. "프로 생활하면서 그렇게 크게 진 기억이 별로 없다. 하늘에서 복수하라고 기회를 준 것 같다. 전북 팬들을 위해 홈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겠다. 5골까지는 아니더라도 되갚아주겠다."
-김상식의 축구인생을 경기에 비유한다면.
"전반 끝나고 0-0이다. 선수로서는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했으니 5-0을 주고 싶다. 플레잉 코치로서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