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인들의 할리우드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충무로의 실력파 감독들이 할리우드 자본으로 현지 톱스타를 캐스팅해 작품을 만드는가하면 배두나·이병헌 등 국내 스타들도 미국 현지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국영화인들이 참여한 할리우드 영화가 차례로 개봉을 앞두고 있어 가시적인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동안 드문드문 할리우드 공략에 나선 한국영화인들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활발했던 경우는 없었던게 사실이다.
세계 영화산업의 메카라고 불리는 할리우드에 진입한다는 건 한국영화와 영화인들의 위상을 높이고 글로벌시장 개척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할리우드로 간 한국영화인들은 누가 있는지 살펴봤다.
▶이병헌·비·배두나 할리우드 성공적 진출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 언어문제와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 등 넘어야할 '벽'이 겹겹이 쌓인 곳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이들이다.
이병헌
출연작 : '지.아이.조1-전쟁의 서막'(09) '지.아이.조2'(12) '레드2'(13) 평가 및 가능성 : '지.아이.조2'의 존추 감독은 이병헌을 두고 "아시아 배우에 대한 선입견을 깨줬다"라고 말했다. 매 컷마다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줘 '할리우드에 온 아시아 배우는 발차기만 한다'는 전형적인 사고방식을 바꿔줬다는 설명. 영어 실력 역시 일취월장하고 있어 액션 뿐 아니라 감정연기까지 멋지게 소화해내고 있다는게 현지 관계자들의 평가다. 출연작 두 편이 공개된 후 인지도가 월등히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배두나
출연작 : '클라우드 아틀라스'(12) 평가 및 가능성 :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제치고 가장 중요한 주인공 손미 역을 따냈다. 영화 자체만으로는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현지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지만 할리우드 관계자 사이에서 나온 배두나에 대한 평가는 합격점이다. 액센트 하나까지 신경을 기울여 현지인들이 듣기에도 지장이 없는 영국식 영어대사를 소화했고 액션부터 내면연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비
출연작 : '스피드 레이서'(08) '닌자 어쌔신'(09) 평가 및 가능성 : 할리우드 첫 출연작 '스피드 레이서'가 흥행에 실패했는데도 '닌자 어쌔신'에서 '원톱 주연'을 따낸 놀라운 인물.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강도높은 액션을 소화하면서 MTV 무비어워즈의 '액션스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국 현지에서도 다양한 TV 쇼 등에 출연하면서 '아시아의 톱스타'로 인지도를 쌓아올린 상태. 이연걸과 성룡 등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중화권 액션스타들이 이미 나이가 든 상태라 비가 이들을 대체할 인물로 떠오를 가능성도 높다.
김윤진
출연작 : '로스트' 시즌1~시즌6(05~10) '미스트리스'(13) 평가 및 가능성 : 영화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TV시리즈에 수년째 출연하면서 스타로 자리매김한 상태.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배우 중 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둬들인 케이스는 김윤진이 처음이다. 차기작 '미스트리스'에서는 당당히 주연을 따냈다. 오는 5월 ABC 방송국을 통해 미국 전역에 방영될 예정이다.
▶박찬욱·김지운·봉준호 실력파 감독 할리우드 입성
'국가대표 영화감독'들이다.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한국의 명감독들이 할리우드 데뷔작을 차례로 내놓는다.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영화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용한 가족'부터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에 이르기까지 액션과 느와르·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확실한 색깔을 드러낸 감독. 어떤 작품에 손을 대더라도 완성도와 재미를 놓치지 않는 실력파다.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는 주지사 임기를 마친 '액션의 전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캐스팅해 화제를 모았다. 무장마약단과 보안관의 한판 대결을 그린다. 이미 공개된 예고편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김지운 감독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살아있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5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됐으며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 뉴라인 시네마의 지원을 받았다.
'올드보이'와 '박쥐'로 두차례나 칸국제영화제를 뒤흔들어놓은 거장. '스토커'의 출연진과 스태프만 봐도 할리우드에서 얼마나 박찬욱을 신뢰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제작자는 거장 리들리 스콧, 음악은 '블랙스완'의 클린트 멘셀이 맡았다. 또 인기 TV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연배우 웬트워스 밀러가 각본 집필을 맡아 눈길을 끈다. 여기에 그동안 박찬욱 감독과 함께 호흡을 맞춰왔던 정정훈 촬영감독이 투입돼 특유의 영상미를 살렸다. 개봉전부터 미국 영화정보 사이트 IMDB가 선정한 올해의 기대작 톱 20에 이름을 올렸을만큼 현지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20세기 폭스사의 지원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
작품명 : '설국열차' 캐스팅 : 크리스 에반스·송강호·에드 해리스·틸다 스윈튼·제이미 벨 개봉일 : 미정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으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감독. '봉테일'이란 별명을 가졌을만큼 디테일하게 완성도를 높이는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다. 엄밀히 말해 '설국열차'는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다. 국내 자본이 투입된 글로벌 합작프로젝트. 하지만 영어로 제작되는 것 뿐 아니라 국내에서는 송강호를, 또 할리우드에서도 틸다 스윈튼 등 존재감있는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 스태프진도 해외인력이 대거 투입됐다. 미국 메이저배급사 와인스타인컴퍼니와 배급계약을 마치고 미국 뿐 아니라 캐나다와 호주·뉴질랜드 지역의 개봉을 확정한 상태다. 한국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인 450억원이 제작비로 쓰였다.
▶박중훈·장동건 할리우드 도전기 절반의 성공
한국 영화인들의 할리우드 진출이 수월했던 건 아니다. 아쉽게 '절반의 성공'에 그친 예도 많다. 박중훈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앞서 박중훈은 '아메리칸 드래곤'(97)을 통해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이 영화에서 박중훈은 '터미네이터'의 마이클 빈과 호흡을 맞췄다. 한국영화 배우중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첫번째 배우가 된 셈. 하지만, 흥행성적은 신통치않았다. 이후 '찰리의 진실'(02)에서 또 한번 인상적인 캐릭터를 맡았지만 이 역시 흥행성적이 저조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장동건의 할리우드 진출도 수월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이승무 감독의 장편 데뷔작 '워리어스 웨이'(10)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영화가 혹평을 들었을 뿐 아니라 흥행에도 참패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전지현 역시 할리우드의 장벽을 완전히 뛰어넘진 못했다. 앞서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고 잘못 알려졌던 영화 '블러드'는 사실상 프랑스와 중국의 합작품. 벅찬 액션연기를 소화했지만 완성도면에서 혹평을 들었을 뿐 아니라 흥행에도 실패했다. 대신 휴 잭맨 등과 출연한 미·중 합작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할리우드스타들과 영화 관계자들까지 관심을 보였을 정도. 하지만 전지현의 이름을 알릴 정도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송혜교는 독립영화 '페티쉬'(08)를 통해 '미국맛'을 봤다. 애초 상업적인 성공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자했던 의도가 없었기에 성패를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일단 할리우드 메이저 캐스팅 디렉터 수잔 숍메이커에 의해 출연이 성사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일단의 성과는 거뒀다고 볼 수 있다는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하정우도 한미 합작영화 '두번째 사랑'(07)에서 베라 파미가와 호흡을 맞추며 미국 영화시장에 발을 디뎠다.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연기력으로는 호평을 들었다.
가장 아쉬운 '한국발 할리우드' 영화인은 심형래다. '디워'(07)에 이어 '라스트 갓 파더'(10)를 통해 할리우드를 공략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프로듀서·작가·감독·배우의 역할까지 도맡으며 과욕을 부린 탓에 처참하게 무너져내리는 결과를 낳았다.
기록상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1호 한국인 배우'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 필립 안이다. 1905년 미국에서 태어나 1956년작 '80일간의 세계일주' 등 다수의 흥행작과 TV시리즈에 출연했던 배우다. 1974년작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등으로 이름을 알린 오순택도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한국배우다. 미국 연극계에서 인정받으며 영화계로 진출한 랜달 덕 김도 기억해야할 배우. '리플레이스먼트 킬러' '씬 레드 라인' '애나 앤드 킹' '매트릭스2'에 출연했다. '쿵푸팬더'에서 거북이로 묘사된 대사부 우그웨이의 목소리 연기를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