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소년은 펑펑 울었다. 대학팀과 연습경기에 공격수로 선발출전했는데 90분 내내 볼 한번 만져보지 못했다. 당시 키가 168cm로 체격이 작아 나가 떨어지기 일쑤였다. 소년은 경기 후 공중전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축구에 회의를 느껴 그만두고 싶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축구변방 울산대에 진학했다.
시련은 계속됐다. 지도자들과 에이전트들이 말했다. "체격이 작다. 장담컨데 프로에 가서 절대 성공 못한다". 눈물을 흘리고 흘리다 결심했다. "택시기사를 하며 뒷바라지한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죄송하지 않나". 소년은 포기하는 대신 이를 악물었다. 끊임없는 기술 연마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약점을 지워냈다. 금호고 1년 선배 박현범(수원)에게 축구를 묻고 또 물었다. 그 소년이 바로 2011년 신인왕 출신이자 이번 겨울이적시장 최대어로 광주FC를 떠나 전북 현대로 이적한 이승기(25)다.
◇전북의 새로운 에이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전지 훈련 중인 전북 현대의 핫 아이콘은 이승기다. 2차례 연습경기에서 비록 팀이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다. 전북 관계자들은 "기대 그 이상이다. 팀에 창조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엄지를 치켜 세웠다. 수원과 브라가(포르투갈)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전북 유니폼을 택한 이승기는 "광주 시절 전북의 정우 형과 같은팀에서 볼을 차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막 뛰어다니며 정우형의 간결한 패스를 받는 상상을 했었다"고 말했다.
이승기는 전지훈련 기간 동안 발등 부상을 당한 에닝요를 대신해 오른쪽 날개를 소화했다. 이승기는 "광주 시절 공격형, 수비형, 측면 미드필더 등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어느 포지션이든지 자신있다"고 말했다. 2011년 8골-2도움, 지난해 4골-12도움을 올린 이승기는 "지난해 광주에서 패배가 반복되다보니 패기가 떨어졌었다. 팀의 간판이면 어려울 때 해결해줘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다시 시작이다. 목표는 매해 작년보다 더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리는거다"고 말했다.
◇인생역전? 아직 아니다
이승기는 낀세대다. 저주받은 88년생이라 불린다. 연령대가 애매해 청소년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와 인연이 없었다. 학창시절 대표팀은 중학교 2학년 때 잠깐 소집된게 전부다. 그 다음 태극마크를 단게 A대표팀이다. 이승기는 잠비아와 우즈베키스탄, 호주, 이란, 크로아티아전까지 최근 5경기 연속 A대표팀에 발탁됐다. 내달 6일 크로아티아와 원정 평가전을 위해 29일 브라질에서 영국으로 출국한 이승기는 아직까지는 대표팀에서 교체멤버다.
이승기는 "대표팀에서 고1 때 이후 8년 만에 벤치에 앉아 경기를 봤다. 아예 몸도 못 푼적도 있다. 화가 나지는 않는다. 부족한 점을 채워야겠다는 오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승기는 대표팀에서 주전경쟁을 펼쳐야하는 이청용(볼턴),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등이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아니냐는 질문에 "요즘에는 대표팀과 비대표팀 선수들이 차이도 크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유럽파들도 뛰어나지만 난 활동량과 과감한 돌파는 자신있다"고 말했다.
이승기는 "호주와 평가전이 끝난 뒤 많은 기자들이 모인 믹스트존을 지나가는데 아무도 나를 잡지 않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기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승기는 그래도 이정도면 인생역전 아니냐는 질문에 "대표팀에 한 번 뽑히는게 소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인생역전? 아직은 아니다. 브라질월드컵 본선 멤버에 든다면 인생이 한순간에 변했다고 할 수 있을거 같다. K리그 클래식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