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오리온스 신임 코치에 선임된 김병철(40) 코치는 의외로 담담했다. 은퇴한 지 2년만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들뜬 기분보다는 부담이 더 앞섰다. 오리온스 수석코치였던 서동철 코치가 18일 여자프로농구(WKBL) 청주 국민은행 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김 코치가 오리온스 코치직을 맡았다. 김 코치는 "지난 17일 저녁에 통보받았다. 얼떨결에 급작스레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서 오히려 더 정신없더라"고 했다.
현역 시절 김 코치는 1997년부터 13시즌동안 단 한차례의 구단 이동도 없이 오리온스에서 선수생활을 이어왔다. 2001-2002 시즌 우승도 이끄는 그는 성실한 자기 관리와 노력으로 프로농구 정상급 슈팅가드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로 떠올랐다. 오리온스는 2010-2011 시즌을 마친 뒤 은퇴한 김 코치의 등번호인 '10번'을 영구결번시켰다. 은퇴 후에도 김 코치는 오리온스 유소년 농구팀장을 재직하는 등 오리온스와 인연을 이어왔다.
농구대잔치 출신 동료 스타들의 잇따른 지도자 데뷔는 김 코치에게도 큰 자극제가 됐다. "용산중-용산고 시절에 함께 지냈던 김승기 KT 코치가 제일 먼저 축하해줬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많이 괴롭혔는데 축하 전화는 제일 먼저 주더라"면서 "(김승기 코치가)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고, 무엇보다 겸손해져야 한다고 응원했다"고 말했다. 대방초교 시절부터 고려대, 오리온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절친' 전희철 SK 코치와 대결에 대해서는 "코치됐는데 바로 연락이 안 오더라"고 놀리면서 "양복 입고 대결하면 신기할 것 같다. 그래도 스포츠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밖에 없다. 당연히 약점을 파고들어 희철이 팀을 이길 것이다"며 각오를 밝혔다.
몸은 떨어져 있었어도 김 코치는 사무실이 있는 고양체육관에서 훈련하는 후배들을 멀리서 꾸준하게 지켜봤다. 그는 경기 흐름을 놓치는 오리온스의 경기력을 지적했다. "주도권을 잡았으면 더 올라가야 하는데 소극적인 플레이를 해서 경기 흐름을 내주는 경향이 많았다"면서 "상대 팀에 흐름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마인드가 중요하다. 먼저 선수 스스로 마인드를 잡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명(名)가드 출신답게 "경기 운영을 할 줄 아는 능력을 선수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코치하면서 그것 하나만큼은 꼭 키우겠다"고 밝혔다. 그는 "공을 많이 갖고 놀면서 화이팅이 넘치는 모습이 좋다"면서 전태풍(33)과 김동욱(31)을 자신의 뒤를 이을 '레전드 후보'로 지목했다.
김 코치의 별명은 '플라잉 피터팬'이다. 고무공같은 탄력과 뛰어난 개인기가 돋보여서 생긴 별칭이다. 이에 김 코치는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데 피터팬은 무슨…"이라며 쑥쓰러워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 이름보다 별명인 피터팬이 팬들한테 더 잘 알려져 있더라. 오리온스 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선수처럼 코치로 다시 날아 옛 영광을 되찾겠다"고 밝혔다.